세조(수양대군)는 친인척을 가장 적극적으로 정사(政事)에 끌어들인 임금으로 꼽힌다. 인재등용이란 명분아래 조정신료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조카인 영순군을 문과에 급제시키고, '이시애의 난'이 일어났을 때는 역시 조카인 18세의 귀성군을 진압총책으로 임명했다. "문(文)에는 영순군,무(武)에는 귀성군"이라는 투톱체제를 만들어 나간 것이다. 이 두 조카들은 세조의 아들인 예종이 즉위한 후 '난언(難言)'사건 등으로 많은 분란을 일으켰다. 앞서 문종은 자신의 동생인 수양대군을 관습도감에 임명했다. 관습도감은 음악에 관한 일을 맡는 한직이었으나,사간원에서는 종친의 정사 관여는 안된다며 극력 만류했다. 결국 수양대군은 조카 단종을 내쫓고 왕위에 오르는 불충을 저지르게 된다. 조선실록은 이처럼 종친의 정사 관여로 발생한 비극들을 수없이 적고 있다. 역사는 대를 물려가며 반복되는 것인가. 아니면 역사를 쉽게 잊는 건망증 탓인가. 요즘 대통령의 친인척 비리로 온 나라가 벌집쑤셔 놓은 듯 혼란스럽다. 주가조작과 보물찾기로 비롯된 이용호게이트가 급기야는 대통령의 처조카가 연루되는 사건으로 번져 구속될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친인척 비리는 과거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정권으로 이어 오면서 번번이 문제가 됐고 국민들의 공분을 산 게 사실이다. 친인척 비리는 우리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도 임기말께 처남이 관여된 '탈세범에 대한 사면 스캔들'이 터지면서 큰 곤욕을 치렀다. 앞으로도 권력에 줄을 대려는 사람들이 있는 한 친인척 비리는 상존할 것이며,일단 문제가 터지면 그 화살은 최고 권력자를 겨냥하게 된다는 점에서 친인척 관리의 중요성이 새삼스러워진다. 며칠전 독일 언론들은 슈뢰더 독일총리의 동생인 포셀러가 관광안내원으로 취직해 7개월간의 실업자생활을 청산했다고 보도했다. 형제애가 각별한데도 도움을 청하거나 누구에게도 부탁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권력을 쫓는 불나방이 없는건 아닐텐데도 포셀러의 사려깊은 처신이 부러울 뿐이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