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닉스반도체와 미국 마이크론테크놀로지의 메모리부문 인수협상 막바지에 인피니언이 새로운 변수로 떠올랐다. 인피니언의 울리히 슈마허 사장이 물밑에서 진행되던 하이닉스와 인피니언간 협상을 공개함에 따라 이들 회사간 협상이 ''암중모색 단계''에서 ''실행가능한 단계''로 전환됐기 때문이다. 하이닉스는 마이크론에 대한 메모리부문 매각과 독자생존이라는 두가지 가능성 뿐만아니라 인피니언과의 제휴라는 또다른 카드를 하나 더 손에 쥐게 됐다. 하이닉스로서는 한결 여유 있는 입장에서 마이크론과 협상을 할 수 있어 협상력이 크게 높아질 전망이다. 여기에다 D램 업체들이 고정 거래처에 대한 장기공급 가격을 1백28메가 S(싱크로너스)D램 기준 4달러선까지 올리기로 한 점도 협상에서 유리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 인피니언과의 논의 어디까지 와 있나 =하이닉스가 인피니언과의 협력을 추진하는 것은 단순한 엄포용을 넘어선 것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지난해 박종섭 사장이 마이크론측과 협상하는 가운데서도 인피니언과 협력 방안을 논의했고 최근에도 인피니언 실무진이 하이닉스에 대한 실사까지 실시한 점을 감안할 때 양측의 제휴 논의가 상당한 수준까지 진행됐음을 알 수 있다. 더욱이 마이크론과 하이닉스의 협상이 막바지 국면에 이른 미묘한 시점에서 슈마허 인피니언 사장이 방한을 결정한 것은 마이크론과의 협상이 깨질 경우 곧바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본격 협상에 들어가겠다는 뜻을 명백히 한 것으로 풀이된다. D램 업계의 짝짓기 게임에서 고립될 처지에 놓여 있는 인피니언으로서는 하이닉스와의 협력이 절박한 실정이다. 마이크론의 하이닉스 메모리 인수가 성사될 경우 D램 시장은 마이크론과 삼성전자의 2강 구도로 재편되고 시장점유율이 9.4%(2000년 기준)에 불과한 인피니언은 설 자리를 잃게 된다. 반면 인피니언이 하이닉스(17.1%)와 손잡을 경우 인피니언은 삼성전자를 제치고 D램 업계 1위가 되면서 확실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다. ◇ 마이크론과 인피니언중 누가 더 유리한가 =전문가들은 하이닉스가 마이크론보다는 인피니언과 제휴하는 것이 시너지 효과가 클 것으로 보고 있다. 인피니언은 3백㎜ 웨이퍼 투자를 제일 앞서 시작했기 때문에 향후 하이닉스의 투자 비용이 대폭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메모리뿐만 아니라 비메모리 사업비중이 높다는 점도 하이닉스에는 도움이 될 전망이다. 마이크론은 자신들이 원하는 D램 사업만을 떼어내 인수하겠다는 입장인 반면 인피니언은 하이닉스의 실체를 유지하면서 지분인수 방식으로 경영권을 인수하겠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하이닉스와 주주들에게는 제일 유리한 방식으로 보인다. 다만 인피니언이 대금을 지불할 능력이 부족하다는 점이 문제다. 모기업인 지멘스가 지분을 철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고 최근 도시바와의 제휴협상도 인피니언의 자금력 때문에 결렬됐다. 일각에서는 마이크론처럼 자사 주식으로 지불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견해를 내놓고 있다. ◇ 세가지 시나리오별 전망은 =채권단 등 하이닉스반도체 구조조정특별위원회는 마이크론과의 협상에 여전히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 채권단은 부실화된 하이닉스의 채권을 회수하는 가장 빠른 길이 마이크론에 매각하는 방법인 것으로 보고 있다. 가격이 낮을 경우 대규모로 부채 탕감을 실시해야 하지만 마이크론과의 협상이 결렬된다면 당장 신규자금을 넣어야 하는 상황이다. 마이크론이 36억달러를 제시했다고 일부 언론이 보도하는 등 양측간 가격차이는 좁혀질 수 있다는 견해가 많다. 또 통상마찰을 비롯한 한국과 미국간 외교관계 측면에서도 마이크론이 유리한 입장이다. 특위측은 그러나 마이크론이 계속 강경한 입장을 고수한다면 계속 끌려다니지는 않겠다고 강조하고 있다. 인피니언과의 협상은 마이크론과의 협상결렬시 대안으로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D램 가격이 5달러 이상으로 확실하게 올라준다면 독자생존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이미 D램 고정거래가격이 내달부터 4달러로 오를 전망이어서 독자생존 가능성도 점차 높아지고 있다. 김성택.김준현 기자 idnt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