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최초의 여성 외교수장으로 주목받아온 다나카 마키코(田中眞紀子) 외상이 외무성 관료와의 마찰 끝에 결국 낙마했다는 소식이다. 다나카 외상은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1972~74) 전 총리의 외동딸로 미국 필라델피아 고교와 와세다대 상학부를 졸업한 뒤 93년 아버지 선거구인 니가타에서 중의원에 당선돼 정계에 진출했다. "정치는 세력이고, 세력은 돈"이라며 일본정치 사상 최강의 파벌을 구축했던 아버지와 달리 그는 자민당 파벌정치의 폐해를 맹공격, 각종 여론조사에서 ''총리로 뽑고 싶은 사람'' 1∼2위에 오를 만큼 열렬한 지지를 얻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朗)내각의 1등공신으로 불린 것도 그 때문이다. 외상이 된 뒤에도 그는 타협을 거부한 채 독자 행보를 계속했다. "안에선 위만 보는 샐러리맨,해외에 나가면 특권층"이라는 첫마디로 ''관료와의 전쟁''을 시작, 횡령사건 관련자를 형사고발하고 대규모 인사를 단행했다. 사무차관 출신을 주요국 대사로 임명하는 관행도 깼다. 외교에서도 미국 중심에서 벗어나 대아시아 관계를 개선해야 한다는 ''탈미입아(脫美入亞)''원칙을 내세웠다. 부시 대통령의 미사일방어(MD)정책을 비판하고 고이즈미 신사참배를 반대한 일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런 행동은 관료들 및 극우파 세력의 반발을 부르면서 온갖 구설수로 이어졌다. 일거수일투족이 공개되면서 사사건건 ''경솔하다''는 평을 받고 급기야 자민당및 내각의 집단 따돌림 속에 중도하차했다. 물론 원인의 상당 부분은 다나카 자신이 제공했을 것이다. 조직 장악에 실패한 데다 약속 취소, 회담 지각, 외교문제로 비화된 사견 피력등 세련되지 못한 처신으로 자질 시비의 빌미를 준 것도 틀림없어 보인다. 바꿔야 할 일이 있어도 먼저 당과 내각내 지지를 확보했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처음부터 계속 흔들다 끝내 떨어뜨린 건 개혁에 대한 기득권 세력의 반감에 여성에 대한 편견이 더해진 결과가 아닌지 하는 의구심 또한 떨치기 어렵다. 분루를 삼키고 있을 다나카의 장차 행보가 궁금하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