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올해 첫 국정연설을 통해 북한을 이라크 이란과 함께 ''악(惡)의 축''이라고 지목한 다음날 워싱턴DC에선 그 의미를 정확하게 해석하기 위한 각종 토론회와 모임이 이어졌다. 백악관은 기자들에게 부시 연설의 진의를 보충 설명했다.주요 TV도 전문가들을 동원,미국의 다음 행동은 무엇일까를 집중 조명했다.워싱턴의 대표적 싱크탱크인 브루킹스연구소도 전문가 8명을 초청,좌담회를 갖고 부시 연설을 분야별로 해부했다. 우리 정부관계자들도 바쁜 하루를 보냈다.다음달 중순으로 예정된 한·미정상회담 의제를 조율키 위해 미국을 방문한 한승수 외무장관은 콘돌리자 라이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만나 진의를 타진했다. 대량살상무기와 관련,3개 국가를 분명하게 경고한 부시 연설의 파문은 그만큼 컸다. 해석은 전문가마다,소속 기관마다 달랐다. 아프가니스탄 이후의 공격목표를 제시했다는 시각에서,테러 후원 국가들에 대한 경고일뿐이라는 평범한 해석까지 다양한 의견이 제시됐다. 그런데 한국문제를 지켜본 전문가들은 북한에 대한 부시 대통령의 입장에 변함이 없다는 점을 주목해달라고 당부했다. 브루킹스연구소 토론회에서도 그같은 지적이 있었다. "작년 3월 김대중 대통령이 워싱턴에서 부시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을 때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의구심을 갖고 있다''는 한마디 말로 분위기를 싸늘하게 만들었습니다. 근 1년이 지나 이제 부시 대통령이 서울을 방문합니다. 그런데 ''악의 축'' 같은 적대적 단어를 사용한 것을 보니 참으로 흥미롭습니다"(이보 달더 브루킹스연구원) 그가 말한 ''흥미롭다''는 표현은 그 때나 지금이나 부시의 입장이 변하지 않았다는,아니면 오히려 강경해졌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미북관계나 남북관계를 놓고 논란이 일때마다 우리 정부는 희망이나 기대를 섞어 해석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그런 해석이 잘못된 분석과 편향된 정책을 낳았다는 비판으로 이어지곤 했다. 부시 대통령의 국정연설은 우리의 소망이나 바람과는 상관없이,그의 대북 인식이 1년 전 그 자리에 서 있음을 차갑게 상기시켜주는 것 같았다. 워싱턴=고광철 특파원 gw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