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7년 5월11일 일본 후쿠오카. 제30차 ADB(아시아개발은행) 연차총회가 열린 컨벤션센터 주차장에는 세계 자동차의 경연장을 연상시킬 만큼 각종 차들이 주차해 있었다. 그 중 대형 리무진과 캐딜락 등 주위의 눈길을 끈 최고급 차종의 주인은 대부분 한국의 시중은행장들이었다. 한국 은행장들의 ''최고급'' 시리즈는 승용차에 그치지 않았다. 은행장이 움직일 때는 현지 점포장을 비롯해 수행비서와 국제담당 상무 등이 그림자처럼 수행했고, 숙소는 초특급 호텔을 이용했다. 국내에서 쓰던 이쑤시개까지 공수해다 쓸 정도였다. 외환위기 이전 국내 은행장들의 행차는 가히 ''나라님''을 방불케 했다. 97년말 터진 외환위기는 은행장들의 이런 ''사치병''을 고쳐 주는 계기가 됐다. 적어도 의전상으로 은행장들의 몸가짐은 상전벽해에 비유될 만큼 바뀌었다. 김정태 국민은행장과 하영구 한미은행장은 아예 수행비서를 두지 않는다. 강정원 서울은행장은 접견실과 회의실을 없앴다. 대신 가방을 직접 들고 틈나는 대로 지방점포와 거래처를 찾아 다닌다. 은행들은 또 행장에게 집중돼 있던 인사 재무 여신 등 분야의 주요 업무중 상당부분을 사업본부 등을 통해 아래로 위임하는 추세다. 그러나 핵심 경영사안에 관한한 은행장들은 여전히 ''절대적인'' 권한을 휘두르고 있다. 지난 1월9일 서울 쉐라톤워커힐호텔의 한 음식점. 국민은행 임원 10여명이 모인 점심식사 자리에서 김정태 행장은 광주일고.서울대 상대 동기동창인 서재인 북부지역본부장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곤 "오늘 오후 1시 이후 통합전산본부장을 맡는다"고 발표했다. 통합본부장 자리를 두고 서 본부장과 경합중이었던 윤옥현 조봉환 당시 전산 1,2본부장도 이 자리에 있었지만 김 행장의 선언 한 마디에 ''마음''을 비워야 했다. 물론 은행장의 당연한 인사권 행사라고 할 수 있지만 보기에 따라선 과거의 ''황제적 은행장''을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비단 김 행장 뿐만 아니다. 형식적으론 대부분 은행에서 ''인사위원회''와 ''여신위원회''에 인사권과 여신권이 위임돼 있다. 그러나 은행장 맘 먹기에 따라서 특정 직원이나 특정 기업을 죽이고 살리기는 아직도 식은죽 먹기다. 최근 세간을 달구고 있는 ''이용호 게이트''와 관련해서도 은행가에서는 행장들의 막강한 권한을 증언하는 갖가지 뒷얘기가 회자되고 있다. 대통령 처조카 이형택씨가 보물 발굴사업에 참여한 신화건설의 부실 회사채를 만기연장받을 수 있도록 할 수 있었던 것은 다름아닌 은행장을 움직였던 것이 결정적 요인이었던 것으로 금융계에서는 보고 있다. 예컨대 2000년 5월말 만기가 돌아온 신화건설의 회사채 2백50억원의 경우 부도 가능성 등으로 인해 만기연장이 사실상 곤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빛은행이 2백20억원에 대해 지급보증의 만기를 연장해 주고 산업은행이 이를 신규로 인수한 것은 은행장이나 총재의 ''결단''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라는게 금융계의 추측이다. 국내 경제부문 중에서 그나마 ''개혁''이 상당한 진도로 이뤄졌다는 은행들이지만 외환위기 이후 터져 나온 각종 추악한 권력 스캔들마다 빼놓지 않고 연루돼 있고, 그 원인의 상당부분이 은행장들의 ''엇나간 결정'' 때문이었다는 사실은 은행장들의 ''가야할 길''이 아직도 멀다는 방증이라는 지적이다. 하영춘 기자 ha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