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말 정부는 ''증권관련집단소송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기업들은 이 법안이 통과될 경우 소송남발로 인해 경영활동이 위축될 것을 걱정하고 있다. 증권집단소송제는 허위공시,주가조작,분식회계 등으로 인한 소액주주들의 피해를 구제하기 위한 제도다. 소액주주 중 일부가 변호사를 선임하여 제소해 승소했을 경우 소송에 참여하지 않은 다른 주주들한테도 배상케 한다. 그러나 이 제도의 도입목적이 정부 주장대로 기업경영의 투명성을 확보하여 소액주주를 보호하는데 있다면,증권집단소송제가 아니라도 방법이 있다. 현행법은 증권시장에서 부정을 저지른 자들을 형사처벌토록 하고 있다. 때문에 효과가 의문시되는 새로운 제도를 굳이 도입할 필요가 없다. 증권거래법은 허위·부실 공시의 경우 20억원의 과징금과 5년이하의 징역에 처할 수 있게 했다. 또 주가조작의 경우 최고 징역 10년이라는 무거운 형량을 규정해 두고 있다. 이밖에 외부감사법상 분식회계에 대한 처벌 내용도 가볍지만은 않다. 이같은 처벌조항이 있는데도 투자자 피해가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것은 법과 제도상에 문제가 있어서라기보다 법 집행이 철저히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위법·부당행위가 있을 경우 처벌규정을 예외없이 적용,잘못에 상응하는 죄값을 치르게 한다면 증시에서의 불공정행위는 더 이상 발 붙이지 못할 것이다. 지난해 12월27일 수원지방법원은 참여연대 등이 삼성전자의 이사진을 상대로 제기한 대표소송에서 ''경영상의 잘못을 인정,전·현직 이사 14명에게 9백77억6천만원을 회사에 배상하도록'' 판결했다. 손해배상액이 회사에 귀속되는 대표소송만 해도 이렇듯 기업에 미치는 영향이 심각한데,소송이익이 소를 제기한 개인에게 돌아가는 집단소송제가 남소(濫訴)방지 대책 없이 도입된다면 소송 사태가 빚어져 기업활동에 큰 차질을 초래할 것이다. ''주식시장의 건전한 발전''과 ''기업경영의 투명성 확보''라는 과제를 시민단체나 소액주주에게 의존하는 것은 정부역할을 외면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집단소송제는 세계적으로 미국과 캐나다의 일부 주에서만 시행하고 있다. 그런데 본고장인 미국에서조차 무분별하고 악의적인 소송남발로 우량기업이 도산하는 등 심각한 부작용에 시달리고 있다. 그래서 지난 95년 ''증권민사소송개혁법'' 제정을 통해 소송제기 요건을 대폭 강화한 바 있다. 만일 집단소송제를 꼭 도입하겠다면 미국의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소송남발을 막을 수 있는 장치가 반드시 마련돼야 한다. 업계에서는 그동안 형사소추가 확정된 경우에 한해 집단소송을 허용하는 방안과 피해입증책임을 원고에 두는 방안 등을 정부에 건의해 왔다. 하지만 국회에 제출한 법안엔 이같은 요구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정부안은 자산 2조원 이상의 증권거래소 상장기업과 코스닥 등록기업을 집단소송 대상(주가조작은 모든 기업)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소송제기에 특별한 제약을 두지 않은 채 형식적 요건만 심사,법원이 허가여부를 결정토록 하고 있어 소송남발사태를 방지하기는 어렵게 돼 있다. 허가요건 또한 구성원 50인 이상,대표당사자 및 소송대리인 요건 제한(최근 3년간 3건 이상 집단소송 제기 실적이 있는 자는 제외)등 최소한에 그치고 있어 일단 집단소송이 제기될 경우 법원에서 불허될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다. 입증책임을 원고측에게 둘 것인가,아니면 기업측에 둘 것인가도 논란이 되고 있다. 그러나 피소기업에 입증책임을 부여하는 것은 이른바 ''주장당사자(主張當事者)원칙''에 위배될 뿐만 아니라 외국입법례와도 상치된다. 미국은 ''연방민사소송규칙'' ''증권거래법''등을 통해 원고가 주식거래로 인해 손해를 입었다는 사실을 입증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우리 경제는 아직 침체국면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소송의 남발을 막을 수 있는 장치도 없이 기업활력을 떨어뜨리는 집단소송제를 도입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업계의 한결같은 바람이다. .................................................................... ◇이 글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