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유럽에선 미혼여성의 임신은 악마와의 동침에 의한 것이며 따라서 단호히 벌해야 한다고 여겼다. 프랑스 법학자 보댕(Jean Bodinㆍ1530∼96)은 저서 ''마녀''에서 여자 나이 여섯이면 판단이 가능한 만큼 상대가 디먼(귀신)이라도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주장했을 정도다. 혼전 임신의 책임을 여성에게 덮어씌우고 미혼모를 죄인 취급하는 건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KBS1TV 일일극 ''사랑은 이런거야''에서 경제적 능력을 갖춘 딸이 아이를 키우겠다는 데도 딸의 장래를 생각, 외손자를 자신들의 호적에 올리겠다는 부모의 모습은 그같은 인식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런 현실에도 불구하고 국내의 미혼모는 급증하고 있다. 혼전 임신으로 1년에 태어나는 5천명의 아기 엄마중 절반 이상이 10대고 심지어 15세 미만도 10%에 달한다고 한다. 10대 미혼모가 아이를 키우거나 아이 아버지와 결합할 확률은 극히 낮다. 결국 6ㆍ25가 끝난지 반세기가 된 지금도 매년 4천∼5천명의 아이를 입양시킴으로써 세계 1위의 ''고아 수출국''으로 불릴 지경이다. 사태가 악화되는 건 성(性)개방 정도에 비해 성 지식은 형편없기 때문이다. 청소년보호위의 조사 결과 여중생의 80%가 성관계와 결혼이 상관없다고 답했다지만 성문화연구소에서 알아본 미혼남녀의 성지식 점수는 남자 61점,여자 57점이었다. 실제 유럽의 경우 평균 30%고 20대에선 60%인 피임약 복용률이 국내에선 3%밖에 안된다. 성폭력이나 청소년 성매매를 가볍게 보는 풍토 또한 미혼모 양산의 주 요인이다. 논란 끝에 ''사후 응급피임약''이 시판된다는 소식이다. 성 문란과 생명경시 풍조를 부추긴다며 반대하는 쪽에도 일리는 있지만 미혼모를 줄일 수 있을 건 틀림없다. 그렇더라도 정말 필요한 건 사후조치가 아니라 예방이다. 구미에선 11∼12세면 피임법을 가르치고 성폭력은 살인과 같은 죄로 다룬다. 우리도 일찍부터 구체적인 성교육을 실시하는 동시에 성폭력 및 10대 성매매를 보다 무서운 죄로 인식시키는 일이 시급하다 싶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