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 FIFA(국제축구연맹) 관계로 프랑스 파리를 방문한 길에 찾아간 은행 환전창구 앞은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그 동안 출장 때 쓰고 남은 유럽 각국의 지폐와 동전을 유로(EURO)화로 바꾸려 했는데,현지인은 물론 외국 관광객들의 대기행렬이 수십 미터에 달해 다음으로 미루었다. 지난 1월1일은 오랫동안 추진해온 유럽 경제통합의 과정에 역사적인 날로 기록될 것이다. 이날 0시 인도양의 프랑스령 레위니옹섬을 시발로 유럽 12개국은 자국통화를 퇴장시키고 유로화를 공용화폐로 쓰기 시작했다. 유로화의 유통은 인구 3억4천만명,세계교역량의 20%를 차지하는 ''유럽합중국(United States of Europe)''의 공식 출범을 의미한다. 유로화는 유럽의 경제통합과 성장을 가속화시킬 것이다. 역내 국가간 환리스크가 사라져 교역과 투자가 활성화될 것이고,이는 유럽지역의 성장잠재력을 키울 것이기 때문이다. 올해에만 0.5∼1.0% 정도 국내총생산(GDP)이 증가할 것이란 분석도 있다. 대외적으로는 유로화가 달러화 엔화와 함께 세계 3대 기축통화로 부상해 새로운 국제통화질서를 형성해 가고 있다. 유로화의 정착에 장애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회원국들간의 경제력 격차는 단일화된 통화 사용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또 유럽의 전통적인 과다한 복지지출,노동시장 경직성 등은 시장 통합의 효율을 떨어뜨릴 소지가 있다. 어쨌든 유로화는 올해부터 전 세계에서 쓰이기 시작했고,유럽은 하나의 경제권으로 통합하기 위한 거보(巨步)를 내디뎠다. 이같은 변화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주고 있는가. 우리의 기업활동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치밀하게 살펴보고 적절한 대책을 마련하여 실행해야 한다. 단기적으로 예상할 수 있는 것은 각국 정부,은행과 기업들이 유로화의 보유비중을 늘릴 것이란 점이다. 그렇게 되면 유로화가 강세로,달러화와 엔화는 약세가 될 것이다. 이는 미국과 동아시아지역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한국의 수출을 위축시킬 수 있다. 중·장기적으로는 유럽경제의 안정적 성장이 한국 등 역외국가들에 수출 확대의 기회가 될 것이다. 따라서 유럽지역에서의 이같은 변화를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당면 과제다. 지난해 한국의 대(對)유럽 교역은 전체의 14.2%에 불과했다. 지리적 여건을 감안하더라도 지나치게 낮은 수준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우리 기업들의 대유럽 진출전략은 무엇일까. 최근 무역협회가 국내 기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조사대상의 66.8%가 ''유로화 통용은 시장환경 변화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유로화 출범에 대한 우리 기업의 마인드가 얼마나 안이한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정부 차원의 노력도 중요하다. 지난해 12월 초 김대중 대통령이 유럽 각지를 돌아보며 ''급부상하고 있는 중국 못지 않게 예의 주시하고 치밀하게 대응해야 할 대상''이라는 사실을 확인한 건 다행스런 일이다. 가속화되는 유로경제권의 통합 동향을 점검하면서 한·유럽간 교역증진,투자 및 기술교류,자원개발 협력을 확대해 나가는 노력을 강화해야 한다. 특히 올해는 한국과 일본에서 월드컵축구대회가 공동으로 개최된다. 축구에 미온적인 미국과 달리 열기가 대단히 높은 유럽의 분위기를 고려할 때,월드컵축구대회는 한국과 유럽의 관계를 한 차원 끌어 올리는 계기가 될 것이다. 한국과 유럽간 이해의 폭을 넓히고 교역상 장애요인을 제거하는데 월드컵축구대회 행사와 그에 따른 문화교류만큼 많은 기회를 제공하는 것도 드물 것이다. 이는 유로 가입 12개 국가 중 5개국이 월드컵축구대회 본선에 진출했다는 점에서도 쉽게 알 수 있다. 또 유로에는 가입하지 않았지만 유럽연합(EU)국가인 영국 등 3개국도 진출했다. 한국은 지난 88년 서울올림픽에 이어 다시 한·일 월드컵축구대회를 통해 세계무대의 전면에 나선다. 이번의 월드컵축구대회를 ''단순한 스포츠 행사''가 아니라 ''전 세계,특히 유럽국가들과의 호혜적 경제관계를 구축할 수 있는 계기''로 적극 활용해야 한다. .................................................................... ◇이 글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