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1980년대 말 부동산 버블이 꺼지는 과정에서 불황에 빠진 이래 10년 이상 장기불황에 허덕이고 있다. 이는 일본 국민들의 지나칠 정도의 저축성향과 부동산 담보대출 관행,그리고 정부의 잘못된 토지보호정책 등에 기인했다. 지난 주 주한 일본경영인들로 구성된 한 포럼에 참가했는데,작년 우리나라 은행들의 가계대출은 크게 증가했으나 기업대출이 저조한 점에 대해 우려했다. 이러한 현상이 지속되면 일본과 같이 부동산 투기로 버블이 발생하고,이를 제거하는 과정에서 장기불황에 빠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가계대출의 증가는 가계의 소비를 증가시켜 경기를 진작시키는데 기여한다. 지난해 2.8% 성장을 견인한 것이 투자나 수출이 아니라 바로 소비였던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러나 생활필수품에 대한 가계소비 증가는 한계가 있고,여유가 생긴 가계자금은 은행예금이나 주식 및 채권 혹은 부동산으로 재테크를 하게 마련이다. IT기술혁신에 의한 금융의 국제화와 경기부진으로 세계적인 저금리시대가 도래해 은행예금의 우선순위는 많이 떨어졌다. 주식시장이 연초에 상승세를 타고 있으나 작년엔 그리 활성화되지 못했다. 채권시장도 불안하다. 그렇다면 가계자금이 갈 곳은 부동산이다. 이것이 부동산 투기 가능성을 높인다. 정부는 지난해 경기부양책을 폈다. 대부분 정부발주 공사 등 건설 건축분야의 촉진책이었기 때문에 부동산 투기를 촉진시킬 소지가 있었다. 여기에 강남지역의 아파트 재건축붐과 아파트 분양권 자유매매제를 악용한 투기세력까지 가세해 부동산을 둘러싼 혈투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지난해 기업의 설비투자는 -9.6%로 크게 위축됐으나 건설투자는 5.3%로 비교적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정부는 투기를 감지했는지 연초부터 세무조사와 과표현실화 등 부동산 과열을 막기 위한 조치들을 내놓고 있다. 이러한 조치들이 주효,부동산 과열을 진정시키고 있으나 소비행태면의 개선을 위해서는 은행대출이 가계중심이 아니라 생산적인 기업대출로 더 많이 전환돼야 한다. 기업의 자금조달 방법은 은행대출과 채권 및 주식발행 그리고 CP 발행 등이 있다. 과거에는 은행대출에 지나치게 의존해 은행의 부실채권 누적으로 97년에 환란을 초래한 바 있다. 그런데 지금은 은행의 지나친 보수경영으로 기업대출의 비중이 낮아 문제가 되고 있다. 주주자본주의 시대에는 기업이 자본시장에서 주식이나 채권을 발행해 자본을 조달하는 직접금융 비중이 늘어 은행차입에 의존하는 간접금융방식보다 높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지난해와 같이 직접금융시장이 불안한 가운데 이를 통한 자금조달이 극히 미미한 상태에서 은행대출까지 가계금융 중심으로 운용되는 것은 경제활성화를 위해 문제라고 하겠다. 지난 89∼90년 부동산 투기가 만연됐던 시기에는 토지 공개념 3법이 제정되기도 했다. 당시에는 86년부터 3년 간 지속됐던 저유가 저금리 저환율 등 3저로 생긴 자금여력을 기업과 가계가 생산적 투자로 연결시키지 못하고,때마침 정부가 부추긴 서해안개발 붐을 타고 부동산 투기를 촉발했다. 부동산투기로 부동산가격이 폭등해 많은 사람들이 부동산 매매차익으로 일확천금할 기회를 엿보았다. 전 국토가 투기장화했고 전 국민이 투기꾼화했다는 냉소적인 지적이 나올 정도였다. 이번에도 가계대출의 증가와 정부의 건설경기 부양책,그리고 저금리가 부동산투기를 촉발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일본경영인들의 충고처럼,경기진작도 좋지만 부동산투기를 경계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생산적 투자를 억제할 뿐 아니라,일한 만큼 벌고 경쟁력 만큼 이익을 올리는 건전한 시장법칙을 훼손한다. 기업들이 토지투기에 나섰던 90년 전후의 부동산 투기와 다르다는 점에서 다행이나,서민주택 등을 대상으로 하는 투기는 국민위화감을 조성해 좋지 않다. 특히 시장경제를 위한 시장의 신뢰성 확보가 시급한 시점에서 투기꾼이 활개치는 상황은 백해무익하다. 일본의 전철을 밟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우리경제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 이제 안정을 찾아가는 금융시장의 생산적 운용이 필요하다 하겠다. ckkang@uo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