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이후 4년동안 겪은 변화가 그전 22년간 치룬 크고 작은 일들보다 훨씬 크고 엄청났습니다" 올해로 27년째 은행원 생활을 하고 있는 외환은행 K지점장의 말이다. 실제가 그렇다. 외환위기 이후 은행만큼 변화가 심했던 분야도 없다. 안정된 정년보장의 신화는 막을 내린지 오래고, 외국물을 먹은 이른바 ''코메리칸''과 젊은 전문가들이 은행 성층권을 물갈이하고 있다. 외환은행에선 작년에 1947년생이 후선으로 밀려났다. 올해는 1948년생 차례다. 이런 식이라면 1949년생인 K지점장은 내년에 ''퇴직행 열차''를 타야 한다. K지점장이 요리학원에 다니기로 맘먹은건 이런 사정에서다. 요즘 대부분 은행에서 50대 은행원은 ''희귀 존재''가 됐다. 한빛은행은 이달 초 인사이동에서 1950년 이전 출생자들을 본점 부장에서 퇴출시켰다. 서울은행은 2000년 명예퇴직을 실시하면서 1949년 이전 출생자를 모조리 몰아냈다. 시계를 거꾸로 돌려 외환위기 직전인 지난 96년으로 돌아가 보자. 당시 5대 시중은행으로 불렸던 조흥 상업 제일 한일 서울은행 본점 부장의 평균 연령은 54세였다. 50대 초반에 부장이 되는 것만도 꽤나 큰 출세로 여겨졌다. 본점 부서장의 진로는 화려했다. 임원이 되면 정년(만 58세)에 관계없이 은행생활이 보장됐고, 임원생활을 마치면 자회사 사장자리가 기다렸다. 설령 임원이 되지 못한 채 부장으로 퇴직하더라도 자회사 임원으로 나가 3년은 더 일할 수 있었다. 외환위기 전까지만 해도 ''대형 사고''에 휘말리지 않고 본점 부장까지만 오르면 60세까지는 생계가 보장됐다. 그렇다면 외환위기 이후 은행원의 정년이 단축된 것일까. 그렇지 않다. 그때나 지금이나 은행원의 법적 정년은 만 58세다. 그런데도 요즘 은행원 중에서 언감생심 정년까지 ''자리 보전''을 꿈꾸는 사람은 거의 없다. 40대와 50대는 물론이거니와 임원도 마찬가지다. 대부분 집행임원이 1년 계약직이다. 그러다보니 작년에 집행임원이 된 사람 중에서도 1,2월에 자녀들의 혼사를 서두르는 사람이 많다. 임원계약이 연장될 것이란 보장이 없기 때문에 현직인 상태에서 혼사를 치르고 보자는 생각에서다. 은행원의 정년이 파괴된 결정적인 계기는 지난 97년 말 터진 외환위기. 은행 퇴출과 합병이 꼬리를 물면서 ''철밥통 신화''는 완전히 무너졌다. 안팎에서 불어닥치고 있는 구조조정과 시장환경의 변혁 속에서 변신하지 않고는 언제 퇴출될지 모르는 신세가 됐다. 비록 은행들이 작년 5조원이 넘는 이익을 냈다고는 하지만 은행원들에게 불어닥친 변화의 회오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물밑에서 진행되는 ''짝짓기 논의''가 본격화되면 은행원들은 또 한번 생사의 기로에 내몰려야 한다. 지금 살아남은 은행원들이 이를 악물고 스스로 ''과거로부터의 혁명적 변화''를 꾀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물론 그들의 변신이 고객에 대한 서비스와 사무처리 시스템에 대한 혁신으로 연결되고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지만 말이다. 하영춘 기자 ha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