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어디 가서 벤처를 한다고 말하기가 창피합니다. 아예 명함도 내놓지 않아요. 벤처기업인이라면 모두 사기꾼쯤으로 보고 있으니" e비즈니스 솔루션 사업을 하는 한 IT(정보기술)벤처의 K 사장(43)은 요새 심정을 이렇게 토로한다. 울화병이 걸리긴 투자자도 마찬가지.벤처기업에 투자한 H씨(53·서울 신림동)는 "벤처가 유망하다는 정부 말을 믿고 주식을 샀는데 휴지조각이 돼버렸다"며 "막막한 심정"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벤처기업인과 벤처투자자들의 속을 썩이는 일차적 원인은 물론 패스21 윤태식씨와 G&G그룹 회장 이용호씨로 대표되는 사이비 벤처기업인이다. 하지만 정치권과 정부도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게 이들의 항변이다. 지난 98년 출범한 국민의 정부는 경제 이념의 하나로 ''벤처육성''을 내걸었다. 그룹식 경영을 해체하고 대기업엔 많은 제재를 가한 반면 벤처기업에는 ''묻지마 육성''정책이 취해졌다. 김대중 대통령은 기회 있을 때마다 벤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정부 각 부처는 앞다퉈 벤처지원정책을 내놨고 벤처 투자를 부추겼다. 이렇게 해 정부가 직접 벤처에 투자한 자금이 5천억원에 육박하고 기술신용보증기금등을 통해 벤처기업들이 회사채를 발행할때 보증해준 금액이 4조원을 넘어섰다. 이 가운데 얼마나 회수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이런 분위기는 국민의 정부 마지막 해인 올들어 싹 달라졌다. 각 부처는 하루가 멀다하고 벤처기업인의 의욕을 꺾는 정책을 내놓고 있다. 증권거래소 상장이나 코스닥등록 요건을 강화하고 부실 벤처기업은 조기 퇴출시키며 벤처졸업제를 실시하는 방안도 마련중이다. 김 대통령도 연두회견에서 벤처 옥석가리기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벤처기업인이나 투자자로선 어리둥절할 뿐이다. 벤처를 키워야 한국경제가 살 수 있다는 정부의 공언은 어디로 간 것인가. 산이 높으면 골도 깊다고 했다. 요즘의 ''벤처 대란''은 정치적 구호로 벤처 육성을 내걸고 ''벤처 버블''과 ''무늬만 벤처'' 키우기에 여념이 없었던 정치권과 정부 책임이 크다. 강현철 산업부 IT팀 기자 hc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