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 TV 방송국에서 내보내고 있는 조선시대 한 상인의 일대기에 대한 드라마가 인기다. 정직과 신용을 바탕으로 난관을 뚫고 거상으로 성장하는 ''입지전''이다. 경쟁 상단(商團)의 온갖 방해 공작을 이겨내는 파란만장한 과정이 극의 재미를 더하고 있다. 이 상인은 조선의 인삼을 싸게 팔 수 없다며 청나라 상인들이 보는 앞에서 불을 지르려 하는 등 대담한 기개와 상술을 펼친 끝에 결국 역사에 이름 한줄을 남기게 된다.한데 이 상인은 폐쇄적이던 당시 기준으로 중벌을 받을 만한 사(私)무역을 한 셈이 된다. 시대는 달라졌지만 보따리 무역이라는 이름으로 인천에서는 개인 무역이 여전히 성황을 이루고 있다. 한·중 수교보다 앞선 1990년 9월 여객선 골든브리지호가 정기 운항을 시작하면서 한국인과 화교,중국인들이 앞다투어 보따리 무역에 뛰어 들었다. 현장의 비공식 집계에 따르면 이들의 한해 교역규모가 10억달러에 이를 정도로 보따리 무역은 급성장하고 있다. 최근 종합상사 명퇴자등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뛰어들고 있고 국산 경공업 제품을 중국에 내다팔고 깨 등 농산물을 국내로 반입해오는 형태가 확산되면서 공식 농산물 수입 기관과 마찰을 빚기 시작했다. 이런 와중에 세관은 지난해부터 반입량을 엄격히 통제하기 시작했고 올부터는 반입 농산물의 품목별 제한을 하면서 보따리상들의 등짐무역이 가격 메리트를 잃어가고 있다. 일부 보따리상들은 이런 세관 당국의 조치에 항의해오다 급기야 지난주 인천국제여객터미널에서 3백여명이 3일간 철야 농성을 벌여 세관의 신속통관과 편의제공을 약속받고 해산하기도 했다. 굳이 사무역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일인무역''은 실직자 구제 등 나름의 역할도 하고 있다"는 이들의 하소연과 ''시장형성은 수요의 반영''이라는 점에서 단속 당국에 어느 정도 호소력이 있을지 궁금하다. 우리가 단속일변도로 나갈 경우 계속 눈감아주고 있는 바다 건너편 중국세관은 어떻게 나올지도 관심거리다. ''민생무역'' 현장의 법과 현실의 간극은 너무 커서 당장은 마땅한 해법이 없어보인다. 김희영 사회부 기자 songk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