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진대제 사장은 정확히 1년전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가전제품 전시회(CES)에서 기자에게 삼성은 지난 15년간의 저지른 ''원죄(原罪)''에 직면해 있다고 실토했었다. 미국시장에 상륙하면서 시장 점유율 확대를 위해 불가피하게 펼쳤던 저가전략이 삼성의 제품 이미지를 싸구려로 인식시키는 원죄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때는 수출금융을 받기 위해 싸구려 제품이라도 해외에 밀어낼 수밖에 없었다는 설명이었다. 그렇지만 원죄를 씻을 기회는 빨리 왔다. 불과 1년후 똑같은 자리인 CES 개막식에서 진 사장은 삼성전자를 대표해 기조연설을 했다. 세계 유수의 기업인들과 기자 등 1천5백여명이 1시간 반동안 ''닥터 진''의 연설을 경청했다. 게리 샤피로 미국가전협회(CEA) 회장은 연설이 끝난 후 진 사장을 ''닥터 디지털''이라고 추켜세웠다. CES는 세계 최대의 가전전시회로 컴덱스와 맞먹는 비중을 갖고 있다. 이 국제행사의 개막식을 장식하는 첫 인물로 진 사장이 선정된 것은 대단히 예외적인 일이다. 한국기업은 물론 소니나 마쓰시타 같은 내로라하는 일본기업들도 가져보지 못한 기회였다. 지금까지 CES 기조연설은 MS HP 델 TI처럼 외신면 머리기사를 장식하는 기업들의 CEO만이 독점해왔다. 올해도 ''메인스트림''은 바뀌지 않았지만 외신들은 삼성전자가 세계적인 기업의 반열에 오를 수 있는 단초를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원죄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지만 ''마이너리그''에서 ''메이저리그''로 올라선 것이다. 그러나 삼성전자가 한국기업이라는 태생적 한계까지 벗어난 것은 아니다. 본사를 해외로 옮기지 않는 한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라는 벽을 넘기는 어렵다. 좁은 자금조달시장,거미줄 같은 규제와 간섭,사회저변의 반기업인 정서,심지어는 선거때면 기업인들이 내키지 않게 출장길을 떠나야 하는 상황 등등. 이 곳에 온 한 기업인은 "삼성전자가 이제야 한국이란 부정적 국가 이미지를 극복한 것 같다"고 말했다. 열악한 한국의 기업환경도 하루빨리 ?메이저?대열에 올라서기를 기대해 본다. 라스베이거스=이심기 산업부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