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hyun@nonghyup.com ''스위스''하면 국민소득이 4만달러를 넘는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라는 것이 먼저 연상된다. 산과 들이 세계의 정원이라 불릴 만큼 잘 가꿔지고 보존돼 있으며 푸른 언덕에는 젖소들이 한가롭게 노니는 모습의 나라가 대개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 스위스다. 스위스 중부의 루체른이라는 곳은 높은 산과 호수로 아름답기 그지없는 도시인데,이곳에는 하얀 절벽에 양각된 커다란 사자상이 있다. 창과 화살에 찔려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형상의 이 사자상은 스위스의 아픈 역사를 상징하는 것으로 국민들의 가슴 깊이 새겨져 있다. 지금은 잘 살고 있지만 스위스는 19세기까지만 해도 유럽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였다. 농업이 주산업이었던 당시 알프스의 준령은 자원이 아니라 부의 유입을 막는 장벽이었으며,국민은 가난에서 헤어나기 위해 자식들을 프랑스 등 인근의 부국에 용병으로 팔아 그 수입으로 살아갔다. 죽어가는 사자상도 루이 16세가 프랑스 대혁명에 의해 쓰러질 때 마지막까지 죽음으로써 그를 지켜준 스위스 용병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스위스가 지금의 번영을 누리는 것은 이들 용병이 보내 온 돈을 헛되이 쓰지 않고 산업자본화한 결과다. 자식들 생명의 대가이니 어찌 헤프게 쓸 수 있었겠는가. 이러한 역사를 안고 있는 나라이기에 스위스 국민들은 근면과 검소를 뼛속 깊이 새기지 않을 수 없었다. 몇 년 전 제네바 근처의 한 농가에서 하루를 지낸 적이 있다. 60살 가까운 부부가 소를 치고 과수를 돌보며 집 떠난 자식들이 쓰던 방을 민박으로 활용해 수입을 올리고 있었다. 더욱 놀라웠던 점은 그 집이 아직도 나무보일러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과수원에서 나오는 나무를 때는 보일러로 난방을 하고 빵을 굽는 것을 보며 이들의 검소한 생활을 실감했다. 1990년대 말 파산 직전까지 갔던 우리 경제가 겨우 회생되긴 했지만 아직 제대로 회복된 것은 아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불과 몇 년 전의 고통을 너무 쉽게 잊어버린 것 같아 안타깝다. 유흥가는 갈수록 흥청거리고 공항에는 해외여행을 떠나는 사람들로 북새통이다. 내 돈 내가 쓰는데 무슨 상관이냐고 할지 모르지만 피땀 흘려 벌고 세금 꼬박꼬박 내는 돈이라면 그렇게 흥청망청 쓰지 못할 것이다. 오늘날의 부국 스위스는 결코 우연히 이룩된 게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