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2002년은 ''유로''와 함께 시작되었다.

금융기관은 물론 신문 방송과 각종 국가기관,공공시설들이 ''유로''화 도입에 대비한 준비에 만전을 기한 결과인지,작년 12월 중순 ''스타터 키트''라는 이름으로 시판된 유로 동전주머니는 시판되자마자 동이 날 정도로 일반 대중들의 열렬한 관심을 끌었다.

지난 3년간 ''눈에 보이지 않는''화폐였던 유로가 이제 보고 만질 수 있는 현실의 돈으로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연일 ''유로,우리의 돈''이라는 표어가 울려 퍼지고 있다.

유로가 유럽을 더욱 더 하나의 유럽으로 단합시킬 것이라고 전망하면서 헬무트 콜 전 총리는 자신이 아니었으면 결코 유럽연합(EU) 공통의 통화인 유로가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호르스트 쾰러 IMF 총재는 유로의 통용을 ''유럽통합의 역사적 이정표''라면서 분위기를 돋웠다.

수도 베를린의 관문이라 하기에는 너무도 소졸한 테겔공항에서 시내로 들어오는 길의 택시운전사는 의외로 어두운 전망을 내렸다.

유로는 강력한 독일경제의 표상이었던 마르크를 약세통화,특히 폴란드나 체코 등 동구권 회원국들의 통화와 뒤섞음으로써 독일에 막대한 손실을 입히고 물가상승을 가져올 뿐만 아니라 경제를 침체시키는 요인이 되리라는 이야기였다.

그 택시운전사의 수준 높은 견해도 놀랄만 했지만,그런 불만과 반대를 무릅쓰고 진행되는 엄청난 변화의 동기와 배경을 짐작하면서 전율을 느꼈다.

아마 단기적으로 볼 때 가장 큰 손해를 보는 나라의 하나가 독일일 것이다.

그런데 독일은 왜 손해를 감수하면서,데마르크(DEM)의 위용을 포기하고,곤두박질쳐 온 유로라는 의문부호가 붙은 통화를 수용한 것일까.

반면 영국은 왜 유로화 대열에 불참하면서까지 파운드를 고수하려 한 것일까.

유로화에 동참한 강세통화권 회원국들의 결정은 일견 정치적 결정처럼 보이지만,장기적으로 볼 때, 아니 단기적으로도 결코 경제적 합리성을 무시한 단순 정치적 선택은 아니었다.

''유로랜드'',다시 말해 유로를 사용하는 나라들은 인구 3억4천만명,세계 GDP의 16%,무역의 20%를 차지하는 세계 제2위의 경제권이다.

이 막강한 경제권이 이제 한 나라처럼 유로라는 단일 통화로 통합되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테겔공항의 택시운전사가 내놓은 우려 깊은 전망은 오히려 부차적인 거래비용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독일을 위시한 EU 중심국가들의 주도로 시장이 확대되고 경제적 효율이 비약적으로 증대되는 유로경제의 전성기가 시작되고 있음이 아닌가.

유로의 통용이 어느 시점에 효과를 극대화시킬 것인지는 미지수지만,그것이 가져올 변화는 가히 혁명적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너무 호들갑을 떠는 일일 수도 있으나,벌써 세계 경제의 중심축이 유럽으로 이동할지도 모른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부럽기도 하고 두렵기도 한 일이다.

우리에게 유로는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일까.

''강 건너 불''처럼 여길지도 모르지만 이제 ''먼 나라 유럽''이란 것은 없다.

엄연한 현실이다.

그러나 그런 현실을 받아들이면서도 아무래도 우리는 준비가 덜 되어 있는 것 같다.

''유로혁명''을 ''먼 나라의 일''로만 보지는 않았다고 해도 이를 너무 단순하게 무역결제수단이라는 차원에서만 받아들이고 있지는 않은지 걱정이 앞선다.

아닌 게 아니라 최근 한국무역협회의 조사에 따르면 유로화 통용에 대비한 국내 무역업체들의 준비 정도는 매우 미흡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물론 설문 대상이 주로 중소기업 위주인 것도 고려해야 하겠고,또 기업의 현실적 시각도 감안해야 하겠지만,유로화 통용에 따른 시장환경의 변화에 대해 ''변화 없음''이 66.8%를 차지한 점은 그런 우려가 이유 없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국가전략적 차원에서 정부는 유로화통용의 정치·경제적 영향에 충분히 대비하고 있는가.

2002년 1월1일 유럽의 새해는 유로와 더불어 밝았지만,우리의 새해는 어떤가.

내로라 하는 정치인들이 하나같이 대선가도에 몰려나와 우왕좌왕하며 벌이는 정치 난장에 사로잡혀 유로가 세계경제를 바꾸기 시작한 것을 시야에서 놓치고 있지는 않은가.

2002년 유로의 출범에 맞춰 우리의 국가경영 전략은 제대로 조율되고 있는지 점검해 볼 시점이다.

joonh2001@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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