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외딴 섬에서 대자연을 벗삼아 망상.번뇌를 여의며 텃밭 일구는 생활을 하다 가끔 법회를 보기 위해 도회로 나오면 다시 번뇌.망상에 끌리는 듯하니, 그것은 세상에 온갖 도둑이 판을 치기 때문이다. 먹고살기 힘들다고 남의 재물에 손 대는 것은 작은 도둑이요, 권세를 이용해 더 많은 재물을 탐하려 하는 것은 큰 도둑이니, 이 모두가 자기 마음자리를 다스리지 못하고 마음가는 대로 행동하기 때문이다. 범부에게는 재(財) 색(色) 식(食) 명(名) 수(睡)의 오욕(五慾)과 잡다한 망상이 끊임없이 일어난다. 이 모두는 말할 것도 없이 번뇌며 고통의 원인이다. 이 번뇌 망상을 여의고 스스로의 마음이 가라앉아 지순해지면 마주치는 모든 것이 아름다워진다. 아미타불 정토란 서쪽으로 멀리 십만억 국토를 지나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마음을 밝히면 처해있는 사바세계가 곧 정토인 것이다. 얼마 전 어느 시골의 한 노파가 죽은 자기 남편이 낸 산불의 피해 배상금 1백20만원을 20년의 세월에 걸쳐 갚은 일이 언론에 보도됐다. 그 노파는 빚 때문에 한 순간도 마음 편히 지낼 수 없었다. 그래서 농사일과 행상으로 한푼 두푼씩 벌어 빚을 다 갚고 나서야 두다리를 뻗고 잘 수 있었다. 그러면서 "죽은 남편도 이제야 비로소 저 세상에서 편히 쉴 수 있을 것"이라며 기뻐했다고 한다. 노파의 순수한 그 마음자리가 바로 지고지순한 아름다운 마음이며 정토이다. 만일 그 노파가 한 생각 돌려 "내가 낸 산불도 아니고 나 먹고살기도 힘든데" 하며 외면했다면 그 생각은 예토의 세계며 작은 도둑이 되는 것이다. 때문에 예토와 정토는 한 생각 일으켜 마음가는 대로 살면 예토요, 그 생각을 바꿔 마음이 깨끗하면 정토다. 혹자는 말할 것이다. 마음만 깨끗하면 가난하게 살아도 행복할 수 있겠냐고. 출가 수행납자에게는 행복도 불행도 다 여의어야겠지만, 세상을 살아가는 범부들에게 행복이란 매우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만족할 줄 모르면 행복도 없는 것이요, 열심히 살아가며 스스로 만족할 줄 알면 행복도 오는 것이니 하루하루를 방일하지 말고 최선을 다하며 노력하는 자세가 중요한 것이다. 백장청규(百丈淸規)로 천고의 빛이 되신 백장회회선사는 '하루 일을 하지 않으면 하루를 먹지 않는다(一日不作 一日不食)'라는 교훈을 남겼다. 스님들도 놀고 먹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뒷날 반농반선(半農半禪)을 제창한 백용성 스님이나, 주경야선(晝耕夜禪)을 주장한 백학명 스님도 백장회회선사의 고풍을 본받아 실천에 옮겼던 것이다. 백장 스님은 자신의 주장을 철저히 실천했다. 그런데 큰스님께서 매일 일하는 것을 민망히 여긴 제자들이 한번은 농기구를 모조리 감췄다. 농기구가 없으면 일을 하지 않으실 것으로 여기고 말이다. 그러자 백장 스님은 공양에 참석하지 않는 것이었다. 제자들이 공양을 드시라고 권유하자, "하루 일을 하지 않으면 하루를 먹지 않는다"란 이 한 말씀뿐이었다. 제자들은 결국 다시 괭이랑 삽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고, 그들도 큰스님이 세운 법도를 철저히 지켰으니 뒷날 총림의 규범으로 백장청규가 빛을 발하게 됐다. 범부들도 백장회회선사의 가르침대로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를 먹지 않겠다는 자세로 자신의 본분에 최선을 다하되, 그릇된 욕심과 망상에 빠져 삿된 마음을 일으키지 않으면 이 세계가 바로 정토요, 행복한 세상이 되는 것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바른 생활을 하자는 것인데, 헛된 욕심과 망상에 빠져 있으면 바른 생활을 할 수가 없다. 세상에는 영원한 것도 없고 견고한 것도 없으며 결국 모두 흩어지는 것이다. 망상분별로 하는 일은 속임이 될 뿐이고,세속의 인연으로 만나는 것도 잠시일 뿐이다. 비록 짧은 시간일지라도 열심히 일하며 부지런히 배워 실행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 부처님께서 아함경에 말씀하셨다. "마음가는 대로 따라가선 안된다. 마음가는 대로 한다면 세상에 모든 악을 짓게 되나니 마음에 따르지 말고 마음의 주인이 돼라.도를 얻는 것도 마음이다. 마음이 하늘도 만들고 사람도 만들며, 귀신이나 축생 혹은 지옥도 만들므로 모든 것은 다 마음에 매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