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을 맞는 미국인들의 감회는 좀 새로운 것 같다. 악몽의 '9·11테러'를 하루빨리 잊고 새출발하려는 모습이 역력하다.WTC 건물이 무너져 내리는 장면이 TV에서 사라진지 꽤 됐다. 다음달에 열리는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 성화봉송이 아프간전쟁 소식에 앞서 나온다. 하지만 미국인들의 새 출발은 바깥 세계보다는 가정으로,미래보다는 과거를 향하고 있는 느낌이다. 미국인들 새해 소망의 주제어는 '가정'이다. 현지 언론들이 소개하는 보통사람들의 새해 결심은 대부분 '가정에 충실하겠다'는 것.'가족과의 식사시간을 늘리겠다''교회에 더 자주 나가겠다''더욱 정직해지겠다'는 등의 내용이 주류를 이룬다. '부자가 되겠다'는 내용의 재물에 관한 소망이 많았던 한 두해 전 닷컴시대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그래서였을까. 뉴욕 맨해튼 타임스 스퀘어에서 열린 송구영신 행사가 예전에 비해 썰렁해 보는 이들을 안쓰럽게 했다. 6천7백명의 경찰이 동원돼 타임스 스퀘어로 가는 사람들을 검문하는 등 테러에 대한 직접적인 우려도 있었지만,사람들은 편안한 집에서 가족과 함께 있고 싶어했다. 가정으로 돌아가는 미국인들의 마음가짐은 과거로 향하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새롭고 신기한 것이 나타나던 닷컴시대는 테러와 함께 끝났다. 이제는 편안하고 익숙한 것을 찾고 있다. 전문가들은 그런 추세를 반영해 올해 각 분야의 유행이 60,70년대의 복고풍으로 돌아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의류업체들은 20,30년 전 유행했던 제임스 딘의 오토바이 재킷과 네루재킷을 올봄 주력상품으로 보고 이미 대량생산에 들어갔다. 영화계에서도 '스쿠비-두' '스파이더 맨'등 과거 히트했던 가족영화의 속편이나 리메이크 작품들이 대거 선보일 예정이다. 브로드웨이도 2차대전 후인 40,50년대를 풍미한 리처드 로저스의 뮤지컬 '오클라호마'가 다시 막을 올린다. 새해를 시작하는 미국인들은 '9·11'을 잊고 싶어하지만,테러는 이미 그들의 생활을 깊숙한 곳에서부터 바꿔놓았다. 그런 변화는 물론 발빠른 기업들의 마케팅 포인트이기도 하다. 뉴욕=육동인 특파원 dong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