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연시면 미담들이 언론을 장식한다. 최근 몇주 동안도 어김없이 아름다운 생각을 실천하는 따뜻한 사람들에 관한 감동의 스토리들이 우리들 마음을 훈훈하게 해 주었다. 각박해진 세태와는 달리,'그러면 그렇지,아직 우리 사회의 도덕성과 인간애는 건재하지'라는 안도의 숨을 쉴 수 있게 하는 이야기들은 우리를 순간적이나마 긴장으로부터 이완시켜주며 옛날을 추억하는 여유까지 갖게 해 준다. 그러나 1년 내내 더 많은 지면과 TV 뉴스시간을 메운 비리 부정 일탈이 우리의 일상이 된 것을 어쩌랴.그 책임은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이 시대와 사회에,특히 엘리트 지도층에 있다고 보아야 한다. 첨단기술에 의한 세상지배가 가속화되어 기존 도덕률로는 통제하기 어려워진 디지털 시대의 도래와,어느 사회도 고립되어 살 수 없는 글로벌라이제이션이라는 거대한 변화의 흐름 한 가운데에서,다음 시대를 이끌어 갈 지도자를 배출해야 하는 대학행정가로서 과거 어느 때보다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 오늘날 대학은 교수와 학생과 교육과정과 시설 등 모든 측면에서 세계적 수준이 돼야 그 장래를 보장받게 됐다. 한 사회에서만 유능한 일꾼이 아니라 세계 무대 어디서든 활약할 수 있는,국제적 감성과 안목과 지식을 겸비하고 외국어 구사 능력을 지닌 인재를 키우고,또 컴퓨터가 바로 일과 삶과 놀이가 된 디지털 세상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일하는 재능,새로운 사고와 기술을 창조 내지 확산하는 창의성과 유연성까지 갖춘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 이런 시대적 요청에 따라 많은 대학이 구조조정을 하고,외국의 유수한 대학을 벤치마킹하며,학술 교환과 협력 프로그램을 만드는 등 빠르게 변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인재의 핵심 요소는 인간적 성숙에 있다. 건강한 인성이 뒷받침되지 않은 지식이나 기능은 단지 허울에 불과할 뿐이다. 자율적이면서 양심적 도덕성을 지니고 타인에 대한 이해와 배려로 더불어 사는 지혜를 갖추고서야 여타의 능력이 유용한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우리사회는 단기간내 급속히 근대화 과정을 거치면서 많은 것들이 생략 또는 축약됐다.근대적 시민의 성숙이 그 하나다.정권이 바뀌면서 '기본을 세우자'는 슬로건이 내걸린 것도 아마 이런 점에 착안한 것이리라.부끄러운 일이지만 더 늦기 전에 반드시 바로 잡아야 할 일이었다.그러나 방법론이 취약했음인지 최근엔 그 슬로건마저 퇴색해 버렸고,'기본'을 학습해야 하는 초·중등학교에 학교·교실붕괴라는 괴질이 퍼지고 있다고 한다. 이 시대에 적합한 교육은 '개구리를 해부하는 것이 아니라,개구리 한마리를 만들어보라고 가르치는 것'이라고 할 때(니콜라스 네그로폰테 MIT 미디어랩 소장),이런 교실에서 나올 수 있는 답이 무엇일지 매우 우려된다. 새해에는 다른 무엇보다도 '기본이 바로 선 한국'을 지향하는 범사회적 교육시스템이 정착되길 바란다.학교도 바로 세워야 한다.그러나 우리를 둘러싼 모든 곳이 교육의 장이 된 오늘날,다음 세대를 위한 교육은 학교만이 아니라 성인들 모두의 책임임을 또한 절감해야 한다. 새해에 바라는 다른 한가지는 양성평등문화의 정착이다.제도적으로는 한국의 여성들은 이미 남성과 동등한 기회와 권리를 누리게 됐다.다행히도 21세기는 이전 어느 시기보다도 섬세한 감수성,탁월한 언어능력,종합적 사고능력,타인에 대한 배려와 포용력,네트워킹 및 조화와 협동,평등주의,원칙존중 등의 성향을 지닌 여성들에게 유리하다고 하니 한국여성들에게도 좋은 기회가 온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오랫동안 체화된 남존여비의 관습이 과연 여성들로 하여금 이런 기회를 활용할 수 있도록 허용할 것인가는 의문이다. 얼마전에 있은 우수 여성과학기술자에 대한 시상은 이런 점에서 고무적이다. 여성들이 사회의 모든 구석에서 남성들과 나란히 기둥을 이룰 때 국가 경쟁력이 배가될 것은 틀림없는 일이다. 여성들에 대한 고등교육이 이전처럼 사장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범사회적 학습과 지원이 요청된다. "21세기의 문맹은 읽고 쓰기를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학습한 것을 버리고 새로 학습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는 토플러의 지적은 한국 사회에도 해당되는 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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