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망의 임오년(2002년) 새해가 밝았다. 나라안팎에서 경기호전 기대감이 한결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회복 경제의 발목을 잡을 "복병"들이 곳곳에 도사려 과거 어느 때보다 세심한 정책대응이 필요하다. 학계.연구소 일각에선 정부의 과도한 경기낙관론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양대선거와 월드컵 아시안게임 등 잇딴 이벤트로 내내 들뜬 분위기가 이어질 전망이기 때문이다. 향후 안정적인 경제운용의 기반을 닦아야 할 중차대한 시기에 차분하게 정책을 펴기 어렵다는 얘기다. 이미 엔저현상이 새해 벽두부터 한국 경제의 최대 화두로 떠올랐다. 소비 건설경기로 버텨온 경제에 거품이 끼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미국의 경기회복 여부는 한국은 물론 아시아 용(龍)들의 경기회복 가능성을 점치는 바로미터이기도 하다. 또 저금리기조가 흔들릴 여지가 많고 하이닉스 대우차 등 구조조정 현안들이 성공적으로 완결될지도 초미의 관심거리다. 이같은 한국경제를 둘러싼 5대복병을 종합 진단해본다. ◇새해의 화두는 '엔저'=엔화환율이 3년2개월만에 최고치인 달러당 1백30엔대로 오르면서 아시아 주변국들의 근심이 커졌다. 엔화환율은 한때 1백32엔선까지 뚫고 올라가 적어도 새해 1·4분기중 1백35엔까지 상승할 것이란 전망이 많다. 일본 언론들은 일본 정부가 1백40엔선까지 용인한다는 보도를 서슴지 않는다. 도이체방크 등 일부 투자은행들도 4·4분기에 1백40엔까지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상황이 급박해지자 진념 부총리와 한승수 외교부장관 등은 과도한 엔저에 대해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중국도 엔저를 예의주시하고 있어 한·중 공동대처 움직임도 엿보인다. 엔저가 지속될 경우 수출경쟁력 저하는 불보듯 뻔하다. 엔화 환율이 1백30엔대 초반까지 오르는 동안에는 원화환율도 동반상승해 원·엔환율 10대1 비율을 유지했다. 그러나 1백35엔 이상으로 뛸 경우 더이상 원화의 엔 동조가 어려울 것이란 시각이 지배적이다. 한·일간 경제여건에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국내 물가영향을 감안할때 정부가 인내할 수 있는 한계점은 1천3백50원선으로 분석된다. 정부와 한국은행은 새해 평균 환율을 1천2백70원대로 보고 경제운용계획을 짰다. 그러나 환율 고공비행이 지속되면 물가 성장률 수출 등 거시변수들이 일제히 흔들린다는 점에서 심각성을 더한다. ◇관제 거품 가능성=2001년 폐장일(12월28일) 증시 종합주가지수는 693.70포인트까지 치솟았다. 경기회복을 확신할 만한 지표가 확인된다면 증시에 다시 불을 지를 가능성이 높다. 부동산 가격도 들먹이고 있다. 아파트 분양시장 주변에는 대략 10조원 안팎의 부동자금이 몰려다니는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에다 정부는 새해예산을 상반기에 SOC(사회간접자본) 등에 집중 투입키로 했다. 국토연구원은 새해에도 부동산 가격이 5%가량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문제는 주식 부동산 등 자산가격 오름세가 실물경기 회복속도를 크게 앞질러 간다는데 있다. 건설경기 부양과 내수진작(소비)으로 버틴 '관제 거품경기'라면 멀지않아 한계를 노출할 것이란 비판도 일고 있다. 한 연구기관 관계자는 "성장률 추락을 막기 위해 적극적인 경기부양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잘못끼운 단추'는 오히려 나중에 문제를 더 어렵게 만들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저금리 기조도 흔들=한은이 2001년중 콜금리를 4차례 인하(연 5.25%→4.0%)하면서 시장금리(3년만기 국고채)는 연 4.34%까지 내려갔다. 국내외 경기회복이 더딘 가운데 9·11 미 테러사태까지 겹친 탓이다. 그러나 3·4분기 예상보다 높은 성장률(1.8%),산업생산 소비심리 개선 조짐,미국 경기의 회복 기대 등이 겹치면서 시장금리는 연 6%를 넘기기도 했다. 시장에선 새해 평균 금리가 대략 6%대 중반에서 형성될 것으로 보고 있다. 콜금리 인하도 사실상 종료돼 금리가 내려갈 요인보다는 오를 요인이 더 많다. 저금리 기조가 깨지면 2001년 극심한 매출부진 속에 저금리로 버텨온 기업들의 수익 악화가 불가피해진다. 또 3백16조원에 달하는 가계빚(가구당 2천2백만원)을 감안할 때 금리가 평균 1%포인트 오르면 연간 가계 이자부담이 3조∼4조원 늘어나게 된다. 한계기업이나 가계의 파산이 몰고올 후폭풍에 대비해야 할 때다. ◇미국경기 살아날까=미국은 최근 10년간 세계경기의 성장엔진 역할을 톡톡히 했다. 미국경기의 하강은 곧바로 세계경기의 추락을 몰고왔다. 그런 점에서 새해 미국경기 회복에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일단 미국내 분석가들은 새해 중반이후 회복을 점치고 있다. 2차대전이후 미국경제가 침체국면을 벗어나는데 평균 11개월(6∼18개월) 걸렸으므로 현재 10개월째인 이번 침체기 역시 거의 끝날 때가 됐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11차례 금리인하,감세,재정지출 확대효과,테러전쟁 종결 등으로 회복여퓽?마련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 경제가 고용불안과 가계빚이라는 악재를 만날 수 있다는 우려도 만만치 않다. 모토로라 루슨트테크놀로지 및 항공업계 등 미국 대표기업들의 감원이 러시를 이루고 있고 미국 가계의 가처분소득 대비 부채비율이 2001년 1백6%(92년 85%)여서 적자에 허덕이는 가계가 많기 때문이다. 미국내 이코노미스트들은 "새해 실업률이 7%까지 치솟을 가능성이 있어 고용불안이 소비 회복의 최대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구조조정 과제 매듭지어질까=정부가 2001년까지 매듭짓기로 했던 구조조정 현안들이 모두 새해로 넘겨졌다. 하이닉스 제휴협상과 대우차 현대투신 서울은행 대한생명 한보철강 등의 매각작업이 아직 더디다. 부분적으론 협상이나 매각이 깨질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채권단 고위관계자는 "협상 상대방인 GM,AIG 등이 미국에서도 터프한 것으로 유명해 낙관하기만은 어렵다"고 말했다. AIG와의 현대투신 매각협상은 이미 배타적 협상시한을 넘겼다. 2년을 끌어온 대우차 매각협상도 좀체 최종 타결 기미가 아직은 안보인다. 한보철강이나 대한생명 매각은 2∼3년간 지연되면서 가격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고 서울은행은 산업자본에 매각을 허용할지가 아직 미지수다. 정부의 새해 경제운용도 구조조정 현안들이 더이상 발목을 잡지 않는다는 전제에서 짠 것이어서 더욱 세심한 뒷처리가 요구되는 대목이다. 만약 이런 현안 중 한두개가 틀어질 경우 다시 회복경제에 찬물을 끼얹을 가능성이 높다. 오형규 기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