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HE WALL STREET JOURNAL 본사 독점전재 ] 유로화가 유로존 12개 국가에서 2002년 1월1일부터 전면 유통된다. 유로화는 유럽경제에 새로운 도약의 발판을 마련해줄 것이라는 소망이 담겨 있다. 세계경제를 이끌어갈 강력한 블록경제를 만들어 보자는 취지도 있다. 새해부터 유로화 단일통화가 전면 유통되지만 유로존 국가들은 당분간 유로화와 기존의 자국통화를 혼용한다. 일종의 '자국통화 흡수기간'인 셈이다. 따라서 유럽의 소매업체들은 1~2개월간 물건값을 유로화와 자국통화로 동시에 매겨야 한다. 대부분의 유럽인들은 아직은 '유로화마인드'가 약한 편이다. 새로운 통화의 전면 유통으로 당분간 어느 정도의 가격혼란도 예상된다. 문제는 이러한 가격혼란으로 인플레가 초래될 가능성이 있느냐는 것이다. 이는 분명 걱정거리다. 일부에서는 심지어 4%정도의 물가상승을 점치고 있다. 유로존국가들의 연간 인플레율이 1∼2%란 점을 고려하면 이런 수치는 엄청나게 높은 것이다. 물가 상승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소매업체들이 통화전환기의 혼란을 이용,교묘하게 물건값을 올릴 것이라고 예상한다. 소매업체들이 물건을 팔면서 자국통화를 유로화로 바꿔줄때 자투리를 챙길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이런 두려움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실제로 영국이 파운드 통화단위를 십진법으로 바꿨던 1971년의 인플레는 무려 9.4%로 치솟았다. 지난 70년 영국의 인플레는 5.6%였다. 그러나 이런 영국의 예가 통화혼용으로 EU지역에서 물가가 급등할 것이라는 주장을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불길한 하나의 전례가 있었다는 것일 뿐이다. 당시 브레튼 우즈체제하에서 영국경제의 통화운용은 혼란상태에 빠져 있었다. 영국정부의 재정적자는 확대됐고 당시 비독립적인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은 인플레를 야기했다. 하지만 유로존은 사정이 다르다. 독립적인 유럽중앙은행(ECB)도 수차례나 인플레를 낮은 수준으로 유지하겠다고 천명했다. 물론 ECB의 인플레억제정책에도 불구,유로화 도입으로 물가가 약간 상승할 수는 있다. 유로존 기업은 유로화 도입으로 추가비용이 소요된다. 새 단말기구입,회계장부 변경,직원교육 등은 모두 추가자금을 필요로 한다. 기업은 항상 가격인상 여파로 수요가 줄어들고 결과적으로 이윤이 감소하지 않는 한도내에서는 물건값을 올리고 싶어한다. 유로화 도입은 기업들에 이런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혼란기에 물가가 오르는 건 상식이다. 소비자들이 맹목적으로 물건을 사들인다면 유로화 도입이 당분간 물가를 급등시킬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그 어느 때보다 '가격비교'에 민감하다. 이는 혼란을 틈탄 가격올리기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기업들이 유로화상승에 따른 비용증가를 가격상승으로 상쇄시키려 할 수도 있다. 제조업체와 소매업체가 담합을 통한 가격올리기를 시도,소비자들의 가격비교 자체를 무력화시킬 수도 있지만 현실적으로 이런 일은 잘 생겨나지 않는다. 당분간 유로화 정착과정에서 소매업체들의 사기판매,환전을 위한 장시간 줄서기등의 부작용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유로화 전면 유통으로 유로존 물가가 크게 오를 것이라는 것은 분명히 잘못된 생각이다. 정리=신동열 기자 shins@hankyung.com .................................................................... ◇이 글은 최근 월스트리트저널에 실린 'Euro Notes Won't Bring Inflation'이란 칼럼을 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