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전.현직 이사 9명에 대한 수원지법의 9백억원 배상판결은 기업경영 전반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이란 점에서 특히 주목할 만하다. 제일은행에 이어 삼성전자에서도 참여연대가 대표소송을 제기, 승소한 것은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본격적인 소액주주운동시대가 왔다는 것을 말해 준다. 대우 등의 대표소송이 진행중이고 집단소송제 도입도 사실상 시간문제로 여겨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기업들이 소액주주운동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게 된 상황임은 더욱 분명해진다. 이런 상황변화는 한마디로 기업경영 관행의 변화를 강요하는 것이기도 하다. IMF 이전까지는 합법적이고 정상적인 절차를 밟아 소집된 이사회에서 이루어진 결정은 설혹 그것이 잘못됐다고 하더라도 그 결정에 참여한 이사 개개인이 책임을 질 이유는 없다는게 일반적인 인식이고 또 법해석이었다. 그러나 이번 삼성전자 사안은 이사회에서의 의사결정에 대해 참여한 임원들에게 책임을 물은 것이다. 중대한 변화라고 볼 수 있다. 이는 제일은행 임원들에게 4백억원의 배상판결을 내린 것과 동일한 논리다. 또 당해대출에 반대발언을 했다는 이사회 기록이 없는 한 참석임원은 배상책임이 있다는 공적자금관련 배상책임임원 선별기준과도 이어지는 것이기도 하다. 잘못된 결정에 대한 임원의 배상책임이 궁극적으로 어떤 결과를 낳게 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시각이 엇갈린다. 이사회기능이 활성화되고 그 결과로 기업경영의 투명성이 제고될 것이라는 전망도 그 나름대로 논리적이다. 반면 위험이 따르는 결정에는 임원들이 모두 몸을 사리게 돼 결국 기업 역동성을 떨어뜨리고 경제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 또한 전적으로 부인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대규모 신규투자에 항상 리스크가 따른다는 점을 감안하면, 기업임원들이 하나같이 이를 기피했을 경우 어떻게 될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바로 이런 점에서 이번 삼성전자 사안은 임원들의 책임한계에 대한 보다 명백한 규정의 필요성을 말해 주는 측면이 있다. 선량한 관리자로서의 성실한 주의의무나 충실의무가 어떤 것인지, 법규정으로 구체화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본다. 그렇지 않을 경우 임원으로 승진할 때는 집 명의도 다른 가족앞으로 돌려놔야 하는 진풍경이 보편화될지도 모른다. 임원배상책임보험은 그 내용과 명칭이 어떻든 임원의 '의무'를 보완할 합당한 제도가 아니다. 그것은 보기에 따라서는 또 하나의 도덕적 해이일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