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이나 할인매장에서는 매장을 돌아다니며 물건을 고르고 가격을 따지게 되지만 홈쇼핑에서는 그렇게 안될 때가 많아요. '주문폭주'니 '선착순 ○○만원 적립금 제공'같은 자막이 나오면 나도 모르게 전화기에 손이 가더라고요" 주부 최모씨(32)는 남편이 출근한 뒤 아침상을 치우는둥 마는둥 TV 앞으로 달려가 홈쇼핑 채널부터 켜는게 버릇이 됐다. 하루 3∼4시간 정도 홈쇼핑 채널을 본다는 최씨는 최근 30만원짜리 금목걸이 2백50개를 한정판매한다는 쇼 호스트의 말을 듣고 얼른 ARS(자동응답전화)를 눌렀다. 하지만 이 일로 남편에게 핀잔을 들어야 했다. 습관적으로 홈쇼핑을 즐기는 '홈쇼핑 중독'현상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최근들어 백화점 셔틀버스가 운행되지 않는데다 홈쇼핑 채널이 2개에서 5개로 늘어나 이같은 현상이 더 심해졌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 늘어나는 홈쇼핑 중독 =주부 조모씨(41)는 얼마전 남편에게 신용카드를 '압수'당했다. 편리하다는 생각에 몇차례 무심코 홈쇼핑 주문을 했다가 2백만원의 카드빚을 진게 발단이 됐다. 조씨는 그러나 그 후에도 남편 몰래 신용카드를 하나 더 만들어 홈쇼핑에 사용한다고 털어놨다. 남편과 함께 식당을 경영하는 이모씨(35)는 부부가 함께 홈쇼핑을 즐기는 케이스. 쇼핑 시간은 보통 새벽 2∼3시다. 낮에는 쇼핑하러 가기 힘든 여건상 물건을 사는데는 24시간 이용가능한 홈쇼핑이 제격이라는 것. 시민단체인 한국소비자연맹이 지난 5월 홈쇼핑 경험이 있는 2백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데 따르면 전체의 10.1%가 1년에 90회 이상 제품을 구입한다고 답했다. 1주일에 최소 2번꼴로 홈쇼핑에 몰두한다는 계산이다. 제품구입 동기와 관련해서는 21.8%가 '시청중 즉석에서 필요하다고 생각돼'라고 응답했다. 충동구매가 많다는 얘기다. 소비자연맹 관계자는 "1주일에 2번 이상 홈쇼핑을 하는 것은 중독에 가깝다"며 "최근 홈쇼핑 업체들이 사상 최대의 호황을 누리는 것에 비춰볼 때 중독자 비율은 더 높아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 왜 중독되나 =안방에서 전화 한통이면 택배로 물건을 받아볼 수 있다는게 가장 큰 이유다. 결제수단이 대부분 신용카드여서 돈을 낭비한다는 기분도 잘 들지 않는다는게 홈쇼핑 경험자들의 말. 또 '○○대 한정판매' '주문폭주' '적립금 10만원 수시추첨' '선착순 경품 증정' 등 홈쇼핑 업체들이 경쟁적으로 내보내는 선심성 사은행사는 시청자들의 마음을 조급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심지어 20만원대 물건을 구입하면 10만원짜리 백화점상품권을 경품으로 제공할 때도 있다. 밤 시간에 자주 홈쇼핑을 한다는 회사원 김모씨(33.여)는 "자리를 비운 사이 마음에 드는 물건을 놓치거나 사은품을 못받을까봐 화장실에도 잘 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 중독되지 않으려면 =전문가들은 사야 할 물품 목록을 미리 작성하고 가격을 여러 경로로 입수해 꼼꼼히 비교하는게 좋다고 조언한다. 값이 싸다는 말만 믿고 덥석 주문하는 것은 금물이라는 것이다. 또 홈쇼핑을 한 뒤에는 구입 품목과 액수를 가계부에 적고 홈쇼핑 채널 시청시간을 제한하는 것도 중독에 빠지지 않는 방법이다.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