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무중(五里霧中)'이란 중국 후한서(後漢書) 장해전(張楷傳)에 나오는 오리무(五里霧)에서 비롯된 고사성어다. 장해는 후한 순제 때 선비로 뛰어난 학덕과 인품에도 불구하고 벼슬길에 나가지 않았다. 순제의 간청도 뿌리치고 낙향했으나 고향까지 좇아온 문하생과 학자들로 인해 편할 날이 없었다. 따라다니는 사람이 얼마나 많던지 은둔한 곳 근처에 그의 자를 딴 공초(公超)라는 거리가 생길 정도였다. 게다가 장해를 찾는 사람 중에는 학문을 숭상하는 부류만 있는 게 아니라 관서사람 배우(裴優)처럼 그의 도술을 배우려는 무리도 많았다. 사방 3리까지 안개를 만들던 배우가 장해의 5리무 도술을 익히겠다며 귀찮게 굴자 장해는 급기야 오리 안개를 피워 자취를 감췄다. 여기서 생긴 말이 '오리무중'이라는 것이다. 안개에 얽힌 더 오래 된 얘기는 '탁록지전'에 전한다. 삼황(三皇, 수인 복희 신농)에서 오제(五帝, 황제 전욱 제곡 요 순)로 넘어가던 시절 신농씨 쪽의 치우(蚩尤)와 황제 헌원(軒轅)의 싸움에서 치우가 천지를 뒤덮는 안개를 일으켜 지척을 분간 못하게 하니 황제가 자석수레 지남거(指南車)를 만들어 방향을 분간,포위망을 뚫었다는 이야기다. 어떤 경우든 안개 속에 갇히면 동서남북은 물론 한치 앞도 구분할 수 없다. 따라서 일의 형국이나 방향에 대해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을 때 오리무중이란 표현을 쓴다. 한햇동안 무엇 하나 시원스레 해결된 일이 없었던 까닭일까. 주간 '교수신문'이 교수 70명에게 '올 한해를 정리하는 한자성어'를 물어봤더니 '오리무중'이라고 답한 사람이 가장 많았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현 위치와 방향을 모르겠다거나 사회현상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것 등을 이유로 꼽았다는 보도다. '이용호ㆍ진승현 사건 오리무중' '건보통합 오리무중' '서울은행 처리 여전히 오리무중' 등에서 보듯 2001년 세밑 국내의 시계(視界)는 제로에 가깝다. 그러나 아무리 짙은 안개도 해가 뜨면 사라진다. 새해의 태양과 함께 묵은 안개가 모두 걷히기를 빌어본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