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도 예산이 1백11조9천8백억원 규모로 사실상 확정된 모양이다. 아직 본회의 절차까지 끝난 것은 아니지만 당초 정부안에서 6천여억원을 순삭감한 수정안이 여야합의로 예결위를 통과한 만큼 '숫자'가 바뀌는 일은 없을 것 같다. 0.5%정도를 깎은 셈이다. 많이 깎아야 예산심의를 잘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정도 삭감에 합의할 것을 왜 길고 긴 정기국회 회기를 다 보내고 임시국회까지 소집했는지,예산안통과 법정시한(12월2일)을 경과한 것이 올해만은 아니지만 정말 이해하기 어렵다. 정기국회 회기가 끝날 때까지 예결위가 계수조정소위도 구성하지 못했었다는 점을 되새기면 그런 느낌은 더욱 두드러진다. 한마디로 경제나 민생에 대한 정치권의 감각을 읽을 수 있게 하는 사례다. 은행법 금융지주회사법 금융이용자보호법 등 금융관련법안과 예보채 지급보증동의안이 이번 임시국회에서 유보된 것 또한 같은 맥락에서 문제로 지적할 수 있다. 이들 법률이 금융구조조정을 위해서도 하루 빨리 결론을 내야할 성질의 것들이란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상환기간이 된 예보채 차환발행외에 달리 방법이 없는 이상 그 지급보증 동의안 처리를 계속 미뤄야할 이유가 무엇일까. 은행법 등 은행지배구조 개편작업과 연관있는 법안 역시 미뤄야할 까닭이 없다. 만약 이들 법안의 내용이 마뜩지 않다면 부결처리하더라도 '결론'을 내야 한다. 불필요한 불확실성이 경제에 미칠 비용을 생각한다면 그러하다. 금융이용자보호법도 마찬가지다. 사채 최고이율을 정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적절한지 그렇지 못한지는 '판단'에 달린 문제지만,어떻게 보더라도 이런 법률안을 계속 미루기만 하는 것은 능사가 아니다. 건강보험 재정통합을 둘러싼 여야의 줄다리기는 또다른 차원에서 문제다. 내년부터 재정통합을 강행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분명히 문제가 있다. 이는 1년 유예기간을 두자는 수정안을 여당측이 제시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러나 유예기간이 최소한 2년이 돼야한다는 야당 주장과 이는 수용할 수 없다는 여당의 격돌로 자칫 내년부터 강행될지도 모르는 상황이 됐다는 것은 생각해볼 점이 있다. 지역가입자 소득파악이 가능한지 등 통합 여건이 돼있는지를 따져 결론을 내야지,유예기간 1년과 2년을 놓고 전부 아니면 무(無)라는 식의 격돌을 벌이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정쟁의 장(場)이 아니라 민생을 위한 국회라면 내년부터는 달라져야 할 점이 한둘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