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가 흔치 않던 시절 집앞에서 일가족이 세차하는 모습은 정겹게 보이기까지 했다. 골목길에 마음놓고 주차하고 물세차하는 것이 불법인 줄도 모르던 호시절의 얘기다. 집과 차,어느 쪽을 우선시 하느냐로 세대를 가름할 수도 있는 지금은 주차장 하면 짜증부터 나는 시대다. '주차전쟁'이란 말이 어색하지 않게 된 지 오래다. 단독·다세대주택 밀집지역의 골목길은 주차전쟁으로 애꿎은 타이어와 백미러가 수난을 당하기 일쑤다. 좀 오래된 아파트단지 역시 화단과 어린이 놀이터가 사라지고도 밤엔 차 대느라,아침엔 차 빼느라 진땀을 흘리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근년에 새로 지은 아파트단지는 사정이 한결 낫긴 하지만 지하주차 기피로 지상에선 가끔 다툼이 벌어지기도 한다. 주차사정이 이 지경이 된 것은 도로와 주차장이 늘어나는 속도보다 자동차 증가가 훨씬 더 빠르기 때문임은 물론이다. 서울시는 공터를 찾아 주차선을 긋고 이면도로에 거주자 우선주차제를 실시하는 등 주차난 해소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하지만 매년 13만대씩 늘어나는 차를 감당할 길은 없어 보인다. 지난 10월말 현재 서울시내 차량등록대수는 2백53만대인 반면 주차공간은 2백9만면에 불과,결국 44만대가 불법주차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국토는 좁고 인구는 많아 주차문제로 골치를 앓던 일본은 지난 62년 차고지증명제를 도입,이를 극복해 냈다. 차를 사려면 거주지 2㎞이내에 차고지를 확보하고 경찰서에서 확인서를 발급받아야 자동차등록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도쿄는 서울보다 3배나 차가 많지만 이 제도로 주택가 골목길엔 방문객 차만 간혹 서 있다고 한다. 주차난은 입시에도 등장,지난 10월 치른 서울대 고교추천제의 면접·구술고사에서 차고지증명제에 대한 의견을 묻는 지경에 이르렀다. 서울시는 지난 89년과 95년,97년 세차례나 건의했으나 좌절됐던 차고지증명제를 다시 추진하겠다고 최근 발표했다. 총론 찬성,각론 반대는 언제까지 계속될지 궁금하다. 양정진 논설위원 yang2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