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연말 이탈리아 우체국 근무자들은 대부분 휴가를 포기했다. 매년 이맘때면 크리스마스 카드와 신년 연하장 등으로 업무가 폭증하는데,올해는 환전기(換錢機) 소포 배달 일까지 생겼다. 이탈리아 정부는 크리스마스를 전후해 전국 1천7백50만가구에 유로화 환전기를 선물키로 결정했다. 유럽단일통화 통용을 기념하자는 뜻에서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국민들에게 복잡한 산수 숙제를 피하게 해주자는 뜻도 있다. 1 대 1,936.27이라는 유로화 대 이탈리아 리라 환율기준을 보면 암산이 쉽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복잡한 환율로 인해 연초에 일상 상거래가 위축되는 걸 막기 위해 환전기를 무상 배포키로 했다. 이탈리아 정부가 선물하는 환전기는 튼튼하고 단순한 기능으로 가격은 1.29유로다. 하지만 이를 전국 가정에 선물하는 데 필요한 예산은 포장·우송료를 포함해 2천만유로가 넘는다. 국민들에게 유로화 기념 선물을 하는 나라는 이탈리아 외에도 있다. 네덜란드 정부는 만 6세 이상의 전 국민들에게 1인당 3.88유로의 동전 세트를 선물했다. 스페인은 6만여개의 유로화 비디오 게임을 전국 초등학교에 배포했다. 그렇다고 유로랜드 모든 국가가 국민들에게 유로화 선물을 하는 것은 아니다. "유로화로 통화체제를 전환하는 데 들어가는 국가 예산이 엄청나니 국민들의 자발적 참여가 절대 필요하다"는 로랑 파비우스 프랑스 경제재무 장관의 말처럼,프랑스인들은 정부로부터의 공짜 선물은 꿈도 꿀 수 없다. 유로화 환전기는 은행이나 기업이 고객 서비스 차원에서 나눠주는 것을 기대할 수밖에 없다. 그것도 안되면 직접 돈을 주고 구입해야 한다. 프랑스인들은 돈과 환전기,장난감 선물을 받는 주변국 이웃사람들이 부럽기만 하다. 그래도 프랑스의 경우는 나은 편이다. 핀란드 정부는 새 화폐 도입을 아예 국고 수입을 올리는 기회로 활용한다. 모든 가격을 유로화로 환산해 정부 수입인지세와 주차위반 벌금을 20% 이상 인상했다. 이처럼 자신보다 불행한 이웃을 보며 프랑스인들은 자국 정부에 대한 섭섭함을 달랜다. 파리=강혜구 특파원 bellissim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