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앞날의 일을 바로 알아 맞힐까 보랴마는 해마다 이맘 때쯤이면 부질없는 일인줄 뻔히 알면서도 내년을 점쳐 보는 예측·예언들에 귀가 솔깃해진다. 새해 2002년은 임오(壬午)년,말띠해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돌려 역사상 임오년에 있었던 일들을 되돌아 보자. 60갑자를 4번 거꾸로 짚어 2백40년 전으로 올라가면,노망끼가 든 영조대왕이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둬 굶겨 죽인 사건이 있던 1762년에 이른다. 유럽에서는 영국이 산업혁명의 여명기를 맞고 있었고,독일에는 괴테가 글을 쓰고 모차르트,바흐 등이 음악활동을 하고 있었다. 60년 내려오면 순조 시대(1822년)에 이른다. 시파와 벽파로 갈려 팽팽했던 당쟁의 균형을 깨뜨리고 외척이 득세하자 이들의 세도정치 아래 정치 기강이 문란해지면서 탐관오리의 가렴주구에 민생이 도탄에 빠졌다. 잇따른 민란이 홍경래의 난으로 절정을 이루다 진압된 지 10년쯤 경과한 때이다. 유럽 대륙을 장악했던 나폴레옹 시대가 얼마전 종식됐다. 스티븐슨이 최초로 철도교를 건설하는 등 각종 발명으로 영국의 산업혁명이 가속화된다. 러시아 문인 푸슈킨이 '유진 도네긴'을 쓰고,슈베르트가 '미완성'심포니를 작곡하고,피아노의 신동(11세) 리스트가 비엔나에서 데뷔했다. 유전학자 멘델,미생물학자 파스퇴르,고고학자 쉬리만이 동갑내기 말띠 생이다. 다시 60년 내려오면 고종 9년(1882년) 6월 신식 군대 도입에 반항해 구식 군대의 반란으로 왕권이 크게 기울게 되는 임오군란을 만나게 된다. 밖의 세상 흐름을 외면하고 사는 우물 안 개구리들끼리의 몸싸움이었다. 서양에서는 열강의 제국주의적 팽창 기운이 밖으로 뻗치고 있었다. 문화계에서는 소설가 스티븐슨의 '보물섬',입센의 '사람들의 적' 그리고 화가 세잔의 '자화상',차이코프스키의 '1812년 서곡',드뷔시의 교향곡 '봄'등이 햇빛을 보았다. 베를린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의 창단,토머스 에디슨의 최초 수력발전소의 설계,런던상공회의소 설립,미국야구협회 결성,일본은행 발족 등이 모두 같은 해에 있었다. 작곡가 스트라빈스키,문인 제임스 조이스와 버지니아 울프,영화제작자 새뮤얼 골드윈 등이 출생했고,과학자 찰스 다윈,철학자 에머슨,화가 로제티,문인 롱펠로 등이 타계했다. 20세기의 임오년,1942년 우리는 일제 강점하에 신음하는 나라 없는 백성이었다. 반면 41년 12월7일 진주만 공습으로 기선을 잡은 일본은 말레이시아 버마 싱가포르 자바 등을 점령하며 기세를 올렸다. 유럽에서는 독일군이 스탈린그라드에 진입하고,유태인 대량학살을 추진했다. 아프리카 전선에서는 영국군이 독일 롬멜군과 토브루크와 벵가지를 주고 받는 사막전으로 힘겨워했다. 이틈에 간디는 인도 독립을 주장하고 나섰다. 사상계에서는 에리히 프롬의 '자유의 공포',베버리지의 '사회보장 보고서',트레블리언의 '영국사회사',문학계는 카뮈의 '이방인',T S 엘리엇의 '4개의 쿼텟',존 스타인벡의 '달이 지다',음악계에서는 어빙 버진의 '화이트 크리스마스',벤저민 브리튼의 '진혼곡 심포니' 등이 말띠해를 장식했다. 과학계에서는 미국에서 에리코 페르미의 원자 분리,최초의 전자두뇌(컴퓨터) 개발,마그네틱 테이프 발명,제트비행기 시험비행 등의 개가가 있었다. 다시 임오년을 눈 앞에 둔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지금 세계경제는 4억 인구가 세계 GDP의 34%를 생산하는 캐나다 멕시코를 포함하는 미국경제권,5억8천만 인구가 세계 GDP의 30%를 생산하는 유럽권,그리고 약 15억 인구가 세계 GDP의 20%를 만드는 한국 중국 일본의 동아시아권 등 크게 셋으로 어림해 볼 수 있다. 35억 가까운 인구가 사는 여타 지역은 세계 GDP 가운데 고작 16%를 나누어 갖는데 불과하다. 최근 40여년 간 각고의 노력에 힘입어 세계 13위 경제국으로 발돋움한 한국은 어디로 갈 것인가. 세계화 조류를 외면하고 살다 나라 망친 과거를 되풀이할 것인가. 요즘 대선 후보로 나선 이들 가운데 세계 흐름과 역사 교훈을 바로 아는 이가 없어 보인다. 역마살 낀 임오년은 다시 국민에게 현명한 선택을 요구한다. pjkim@ccs.sog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