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후반 아시아 개발도상국들이 겪은 금융위기는 외부충격을 견뎌내지 못한 취약한 경제구조에서 비롯됐다. 자산에 대한 과대평가,엉성한 위험관리,취약한 금융시스템에서 벗어나지 못한 나라들이 위기에 빠졌다. 이들 국가에선 은행대출과정에 정치적 입김이 작용하고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가 만연했다. 러시아 태국 한국등 아시아국가들이 금융위기를 겪은 후 세계 각국과 국제금융기구들은 또다른 위기를 막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고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고 있다. 다섯가지 부문에서 진전이 이뤄졌다고 말할 수 있다. 첫째는 환율시스템이다. 멕시코 러시아에서 확인된 것처럼 고정환율제도나 자국통화를 달러가치에 연동시킨 페그제도 등은 외부충격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게 만들고 자국의 금융정책운용을 어렵게 하는 부작용을 초래했다. 이에따라 많은 개도국들이 환율제도를 자유변동환율체제로 바꿨다. 둘째, 부채관리가 개선되고 있다. 위기를 겪은 많은 개도국들은 외환보유액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단기부채를 안고 있었다. 이들은 국제금융환경이 불안해질 경우 단기부채를 연장시키는게 얼마나 어려운지 확인한 후 단기부채관리에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 셋째, 표준화및 규격화가 이뤄지고 있다. 은행감독규정, 회계준칙및 지불시스템등에서 국제표준을 따르려는 노력이 이뤄지고 있다. 넷째, 국제금융기구도 개도국 위기를 예방하기 위해 좀더 효율적으로 변모하고 있다. 다섯째, 국제 민간금융기관들이 국가부도를 막기 위해 적극 나서고 있다. 개별국가별로는 자국 기업의 부도로 인한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한 장치가 있지만 국가간에는 강제력을 가진 특별한 절차가 없다. 그러나 최근 들어 국제 민간금융기관들이 부채교환,만기연장,신규 자금지원등 다양한 형태로 특정국가 부도가 세계 금융시장에 미치는 충격을 줄이기 위해 나름대로의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 이처럼 다섯가지 분야에서 이뤄지고 있는 변화나 진전이 개도국의 금융위기를 예방하는데 나름대로 기여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이는 필요조건일 뿐 확실한 처방이 될 수 없다. 외부 충격은 언제든지 올 수 있고 그 충격을 이겨내기 위해선 위에서 언급한 다섯가지만으론 충분치 않다. 다섯가지 조건이 갖춰졌다고 하더라도 건전한 금융기관과 건실한 재정정책없이는 위기를 피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금융개혁을 지속하고 기업지배구조를 꾸준히 개선하는게 중요하다. 많은 개도국들이 위기 이후 금융분야가 호전되면서 금융개혁에 느슨해지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것은 미래의 위기를 불러오는 씨앗이 될 수 있다. 건전한 재정정책도 필수적이다. 90년대 후반 멕시코와 러시아,최근의 아르헨티나는 모두 재정상태가 좋지 못해 결국 금융위기를 맞았다. 특정 국가가 재정적자 확대로 국가 빚을 제대로 갚기 어려울 것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면 외국자본은 순식간에 빠져나가게 마련이다. 건전 재정은 건실한 금융기관과 함께 금융위기를 막을 수 있는 보루가 된다. 최근 국제자본의 흐름이 핫머니 형태의 초단기 투자보다는 직접투자나 장기 포트폴리오 투자쪽으로 바뀌면서 금융위기를 초래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다소 줄었다. 이런 흐름을 감안한다고 하더라도 개도국들은 건전한 재정과 건실한 금융시스템을 갖추지 않을 경우 언제든지 위기에 노출될 수 있다. 정리=고광철 워싱턴특파원 gwang@hankyung.com .............................................................................. ◇이 글은 로렌스 마이어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이사가 18일 워싱턴DC 국제전략연구소(CSIS)에서 행한 강연을 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