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鎭愛 < 건축가 / (주)서울포럼 대표 > 21세기를 본격적으로 연 2001년,결코 희망적이지 않은 한해였다. 세계적으로나 국내적으로나 '비전의 21세기'가 아니라 '우울한 21세기 블루스'를 느낄 수 있었을 뿐이다. 굵은 사건들만 꼽아도 정신이 없다. 세계 뉴스에서는 단연 9월11일의 미국 뉴욕 무역센터빌딩에 대한 테러,그 배후로 지목되는 오사마 빈 라덴을 잡기 위한 아프간 공습이다. 차라리 국가 간의 '전쟁'이라면 명분이라도 분명하고 서로의 이해관계에 대해서 현실적인 판단이라도 할 수 있으련만,이건 '민간 테러'에 '전쟁 같지 않은 일방적 전쟁'이다. 이른바 '문명 충돌'로 번지지 않기만을 바라는 심정이 됐고,편지봉투 뜯어보기조차 겁나는 생화학 테러로 번지지 않기를 바라는 심정이 됐다. 특별한 묘수를 찾을 길 없는 소외되고 소외된,밟히고 밟힌 '개인'이 얼마나 파괴적일 수 있는가,이 세계화된 사회에서 소수의 개인들이 얼마나 가공할 만한 파괴적 위력을 가질 수 있나 하는 두려움도 생겼다. 국내 뉴스에서는 침체되는 경제 속에서 온갖 '공방'만 무성한 해 아니었나? 김정일 위원장 답방과 대북정책에 대한 공방,언론 세무조사의 효과와 동기에 대한 공방,지금도 시시각각 드러나는 온갖 권력부근 '게이트'들에 대한 공방이다. 대외적으로도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문제,쿠릴열도 꽁치조업협정 등 공방적인 사안들이 무성했다. 민생 사안도 의약 분업의 경제성 공방,교육개혁 공방,주5일 근무제 도입을 둘러싸고 공방이 끊이지 않았다. 어느 사안도 시원하게 그 결과나 성과가 명명백백하게 나타나서 수긍하고 또는 비판하고 개선하면서 앞으로 나아간 것이 없다는 것이 찜찜하게 만든다. 세계적으로나 국내적으로나 확실히 '불확실성'의 시대가 깊어가고 '비 예측성이 높아지는 시대' '신뢰가 흔들리는 시대'가 되는 것이 아닌가.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언제 어디서 위기가 올지 모른다. 누구도 믿을 수 없다. 어디도 기댈 데가 없다'와 같은 불안 심리에 휩싸이는 것이 아닌가. 그야말로 '카오스적 세계'가 되는 듯 싶다. 국제정세 불안,정치 불안에 경제 역시 결코 간단치 않은 복잡 상황으로 접어들었다는 것도 겁나는 일이다. 세계화의 경제적 효과에 대한 장밋빛 미래나,정보화의 긍정적 효과는 금방 기대할 수 없더라도,그렇게 뜬다고 하던 IT산업의 퇴조,이래저래 지고 있는 벤처기업들,쉽사리 촉진하기 어려운 소비심리도 불안하다. 감히 입에 잘 올리지 못하던 장기불황 복합불황 세계공황이라는 말도 심심찮게 등장하니 불안심리를 더욱 깊게 하는 듯 싶다. 이 우울한 21세기 블루스를 어떻게 이겨낼 것인가? 비록 쉽지는 않겠지만,여전히 '긍정은 긍정을 낳는다'에 기댈 수밖에 없지 않을까. 지금과 같은 카오스적인 세계에서는 부정은 부정의 사이클을 강화할 뿐이다. 그러나 아주 작은 긍정이 크나 큰 긍정으로 번져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당연히 내년을 기대해 본다. 2002년은 한국에 각별한 해임이 분명하다. 공방만 무성한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일들이 일어나면서 그 일을 여하히 잘 해냄에 따라 21세기 블루스를 현명하게 넘어설 수 있지 않을까? 월드컵 행사는 각별한 시민의식,세계 시민으로서의 우리 역량을 확인케 하는 계기가 돼야 할 것이다. 경기의 이기고 짐을 떠나서 스포츠 정신을 문화적으로 경제적으로 외교적으로 접목할 수 있는 실용적인 시민의식이 생기게 되지 않을까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지자체 등 두번의 선거를 거치면서 또 다른 성숙단계로 넘어가는 시민사회를 기약할 수 있지 않을까? 공허한 공방이 아니라 힘들게 내리는 선택에서,그 선택에 따르는 일들을 구체적으로 해 내면서 긍정적인 사이클로 넘어가 보기를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우울증은 남이 무엇을 해주어서는 절대 풀리지 않는다. 오직 자신이 직접 나서서 무언가 구체적으로 할 일을 찾고 그 일을 해낼 때 비로소 우울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커진다. 비판과 공방만 하다가 점점 더 헤어나올 수 없는 블루스에 빠져버리지 않기를.21세기 블루스에 빠진 2001년을 보내면서,'부디 긍정하자'고 다짐해 본다. jinaikim@seoulforu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