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가톨릭 신학을 집대성한 토마스 아퀴나스는 여성을 선천적으로 결함과 사악함을 지닌 '잘못 태어난 남성'으로 규정했다. 불교의 경우도 여성 비하는 약속이나 한 듯 똑같다. '법화경'에는 여자가 성불하려면 남자로 다시 태어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창시자가 남자인 유태교 기독교 이슬람교 불교 유교 등 동서양의 종교는 한결같이 가부장제적 전통을 지니고 있다. 여성은 남성보다 수동적이고 열등한 존재이며 동시에 파괴적인 성적 에너지의 소유자로 간주돼 남성에 의해 철저히 관리·통제돼야 한다는 경훈이 없는 종교는 아마 없을 게다. 창시자가 여자인 경우도 교조만 여자일 뿐이다. 하지만 스스로 성차별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종교는 없다. 종교란 남녀평등과 같은 보편적 인간가치를 추구하게 마련이어서 교리에는 여성에 대한 경계와 함께 긍정적인 찬사도 상비해 놓고 있다. 힌두교의 여신신앙이나 가톨릭의 마리아신앙은 여성을 종교적으로 이상화시킨 산물이다. 유교의 음양론에도 여성에 대한 높은 평가가 들어 있다. 여성에 대한 이런 이중적 사고가 종교에는 전통적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 일반적으로 한국의 종교 신도는 여자가 남자보다 압도적으로 많다. 그런데도 교직자나 조직관리자는 남자가 거의 독점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1백세 먹은 비구니도 갓 출가한 비구에게는 먼저 합장을 해야 하고 안거때는 비구의 지도를 받아야 한다는 불교의 '팔경계법'이 아직 없어지지 않은 것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원불교의 여교직자인 정녀(貞女) 31명이 결혼하지 않고 수도와 봉사에 전념할 것을 다짐하는 독신서약을 집단거부했다는 소식이다. 일찍이 남녀평등이 강조돼 교직자의 3분의 2가 여성인 종교여서 더 놀랍다. 정남(貞男)은 결혼이 문제되지 않는데 대한 반발이라니 고조되고 있는 성평등 바람이 종교계에도 불어닥치고 있는 것일까. 이 작은 반란이 타 종교에 미치는 영향은 자못 클 것 같다. 그 해결방안에 관심을 갖게 되는 까닭도 그 때문이다. 고광직 논설위원 kjk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