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의 기업계와 금융계에선 이른바 '아메리칸 스타일'이 의문의 여지가 없는 왕도(王道)였다. 기업 회계기준도 미국식으로 맞춰야 했고 금융거래도 미국식이 아니면 '퇴출'이었다. 기업인 금융인들도 미국서 공부한 '해외파'가 우대받았다. 아예 한국말을 못하는 미국인이면 더욱 좋았다. 지금 미국에선 최대 에너지중개회사인 엔론이 파산위기에 몰려있다. 매출 50억달러짜리 회사에서 불과 10년만에 2천억달러 규모로 급성장한 신데렐라. 그런 회사의 성장과 몰락과정을 보면 무엇이 '아메리칸 스타일'인지 도무지 헷갈린다. 우선 기업운영방식. 엔론의 기업확장은 '문어발식' 그 자체였다. 사업대상은 석유 가스 등 에너지에서 물 기후선물 등 비에너지 분야로 확대됐다. 신경제붐을 타고 광통신사업에까지 진출했다. 필요한 자금은 '회계분식'을 통해 조달했다. 주식을 발행해 계열사에 출자하고 계열사는 엔론의 보증으로 채권을 발행해 엔론에 지급했다. 이를 위해 엔론의 재무담당들이 계열사의 대표로 '낙하산'을 타고 내려갔다. 그런 계열사가 30개가 넘는다. 금융회사들의 모습도 다르지 않다. 신용평가에 관한한 절대적 권위를 갖고 있는 무디스와 S&P가 엔론의 신용등급을 조정한 것은 항상 문제가 터진 뒤였다. 지난 10월 감독기관이 부당거래 조사에 들어가자 BBB+이던 등급을 BBB-로 내렸고 다이너지와의 합병무산으로 주가가 폭락하자 정크본드 수준으로 낮췄다. 물론 이때까지도 상당수의 증권회사들은 엔론 주식을 '강력매수'추천했다. 회계법인 아더 앤더슨은 엔론이 기본적 회계준칙을 명백하게 위반한 사실을 알고도 묵인했다는 의혹까지 받고 있을 정도다. 개인들의 투자행태도 '묻지마 투자'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복잡한 금융거래로 소문난 엔론의 재무제표보다는 케네스 레이 회장이 부시 대통령과 절친한 친구라는 사실만 보고 투자한 대가를 지금 혹독하게 치르고 있다. 엔론의 케이스는 '아메리칸 스타일'의 예외일까. 그러니 계속 '아메리칸 스타일'을 고집해야 하는 것일까. 정말 모를 일이다. 뉴욕=육동인 특파원 dong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