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부 개도국들이 막대한 국가채무를 제대로 갚지 못할 위기에 빠져 국제금융계의 불안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자력으로 감당하지 못할 국가 빚 문제를 순수한 시장경제원리에 맡겨 버릴 경우 채권단인 민간 금융기관은 빌려준 돈을 제대로 받지 못할 뿐더러 국제금융체제가 혼란에 빠질 수도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접근방법이 필요한 시점이다. 접근방법의 목적은 막대한 부채에 시달리고 있는 국가가 국제금융사회로부터 다시 신뢰를 얻고 채권단도 빠른 시일안에 질서있게 빚을 받아내는 새로운 공식체제를 구축하는 것이다. 국채 재조정을 위한 새로운 체제를 만들기 위해 우선 국제통화기금(IMF)이 중재자로 나서야 한다. 특정국가로부터 구원요청을 받은 IMF는 해당 국가에 대해 수개월간의 채무지급정지를 선언한다. 그 기간중 해당 국가와 채권금융기관이 머리를 맞대고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채무재조정방안을 강구하게 된다. 이 방법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네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채권금융기관으로 하여금 개별적으로 법적절차에 의존해 빚을 받아내려다 채무재조정협상을 깨뜨리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규제해야 한다. 둘째, 그 대가로 채무재조정을 받는 국가는 합리적인 경제정책을 선택하고 성실하게 재조정협상을 하면서 모든 채권금융기관을 동등 대우토록 제도화해야 한다. 셋째, 채권금융기관들은 해당국가가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자금을 신규 지원토록 하되 그 자금은 기존 빚보다 먼저 상환토록 한다. 넷째, 주요 채권금융기관들이 이런 재조정협상에 합의할 경우 소수 채권단도 똑같은 절차를 따르도록 한다. 일부 소수 채권자가 주요 채권금융기관들이 만든 안을 따르지 않고 별도로 상환압력을 넣는 일을 막아야 한다. 이같은 네가지 요소가 새로운 채무재조정 체제를 구축하는데 필수적이지만 그렇게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우선 그런 체제를 작동하게 하는 법적 기반이 없다는 점이다. 채권금융기관이 모두 따를 수 있는 국제적인 법적장치가 뒷받침돼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것이다. 또 한가지 과제는 이런 체제를 작동시키는 주체다.여러가지 아이디어가 있을 수 있지만 해당국가가 감내할 수 있는 빚이 어느 정도인지,그 나라가 경제정책을 제대로 펼치고 있는지를 가장 잘 평가할 수 있는 IMF가 적격이라고 본다. 채무재조정 대상 국가가 채무상환 일시정지 혜택을 누리면서 성실하고 적절한 정책을 추진하지 않을 가능성도 문제다. 그밖에 IMF는 채무재조정후 해당 국가가 적정한 수준의 외환보유액을 쌓고 필수품을 수입할 수 있는 정도의 제한적인 자금지원을 하는 것도 필요하다. 또 외국채권단이 합의한 채무재조정안을 국내 채권단도 따르도록 해야 한다. 새로운 채무재조정체제를 구축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국제금융시장의 안정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필수적이다. IMF 이사회는 다음달께 이 문제를 심도있게 논의할 예정이다. 모든 회원국들의 동의를 얻어야 하기 때문에 단시일안에 실현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2~3년이 걸릴 수도 있다. 최근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르헨티나나 터키등에 바로 적용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막대한 부채를 안고 있는 국가들을 그냥 놔두거나 채권단이 개별적으로 상환노력을 기울이는 것보다는 새로운 체제를 활용한 해결방법이 양쪽 모두에게 이로울 수 있다. 세계경제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정리=고광철 워싱턴특파원 gwang@hankyung.com .............................................................................. ◇이 글은 앤 크루거 IMF 수석부총재가 26일 미국 내셔널이코노미스트클럽에서 강연한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