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운용과 관련,기금제도 만큼 말도 많고 개편에 개편을 거듭한 것도 드물 것이다. 그런데도 부실운영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은 가시지 않고 있다. 기획예산처 기금운용평가단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57개 공공기금의 2000년도 운영성과를 1백점 만점의 점수로 매겼을 때 평균 51.6점에 불과했고,통상적인 업무수행결과에도 못미치는 50점 미만 기금들도 44%에 이르렀다고 한다. 또 이들 기금의 최근 3년간 손실이 50조원을 넘었다고 하니 기금재정 부실화를 가속화시켰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물론 기획예산처 설명대로 3년간 손실 50조원은 방만한 기금운용의 결과라기 보다 외환위기 극복과정에서 불가피했던 공적자금 투입에 따라 예금보험기금과 부실채권정리기금의 손실이 각각 51조원과 4조5천억원에 이른데 주로 기인한 것이어서 정부책임으로만 돌리기엔 적절치 않은 면이 없지 않다고 본다. 또 기금운용 효율화를 위한 정책적 노력도 결코 과소평가할 수 없을 만큼 적극적으로 추진돼온 것이 사실이다. 지난 93년 1백14개에 이르던 기금을 지금은 61개로 줄였고,내년엔 51개로 줄일 계획이다. 의원입법 형식이긴 하지만 보고에 그치던 공공기금에 대한 국회 통제권을 강화해 심의·의결을 받도록 하는 기금관리기본법 개정도 추진중에 있다. 문제는 이러한 노력들이 범정부적인 차원에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예산당국만의 외로운 투쟁이란 점이다. 각 부처가 꿰차고 있는 돈주머니를 빼앗거나 일일이 간섭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는 그간의 기금제도 개편과정이 잘 설명해준다.94∼99년 사이 연평균 10여개씩의 기금을 정비했지만 반면 3∼4개씩의 기금이 신설됐다. 또 지난해의 기금운용규모는 97년에 비해 3배 가까이 커졌다. 그러다 보니 넓은 의미에서 정부가 거둬 쓰는 재정의 비효율은 더욱 심화될 여지가 커진 것이다. 예컨대 각 부처가 별도의 돈주머니를 차고 운용하다 보면 비슷한 사업에 중복지원하는 사례가 적지 않고,재정지원 루트가 복잡하다 보니 국민들이 이해하기도 어려워 수수방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를 시정하는 방법은 기금수를 대폭 줄이고 기존 기금의 역할과 기능을 대폭정비하는 것 뿐이다. 특히 과도하게 설정돼 있는 기금운용의 범위를 최대한 축소시켜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 대신 재정이 담당해야 할 부분은 정부예산으로 넘겨 국회심의를 받아 집행토록해야 할 것이다. 이는 부처간 협의로 될 일이 아니다. 범정부 차원의 결단이 필요한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