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채원 < 현대.기아차 연구개발본부 부사장 > 사람은 누구나 한가지씩 남보다 잘하는 장기가 있게 마련이다. 차도 마찬가지여서 디자인이 좋은 차가 있는가 하면 엔진이 좋은 차도 있다. 그래서 가장 좋은 차를 만드는 방법중 하나는 여러 다른 차의 장점을 결합시키는 것이다. 이렇게 이론상으로만 가능한 꿈의 자동차가 실제로 만들어진 적이 있었다. 바로 세계 최초의 퓨전카 'AC 코브라'(AC COBRA)가 그 주인공이다. 원래 AC 코브라의 원조는 영국의 스포츠카 제작회사인 AC사였다. 20세기초부터 스포츠카를 제작해 온 AC사는 1953년 2리터 6기통의 구식 엔진을 얹은 2인승 스포츠카 에이스(Ace)를 발표했는데, 힘이 부족해 1956년 브리스톨(Bristol)사의 6기통 엔진으로 출력을 높였다. 하지만 이 차도 차츰 경주에서 뒤지기 시작했다. 마침 대서양 건너 미국에서는 한창 자동차 공업이 발전, 값싸고 우수한 엔진이 대량으로 제작되고 있었다. 바로 이 점에 착안해 AC 코브라를 만든 사람은 50년대말 유럽에서 카레이서로 활약했던 미국인 캐롤 셸비(Caroll Shelby)이다. 은퇴 후 미국으로 돌아온 셸비는 영국의 발달된 보디제작기술과 아름다운 차체 디자인 감각에 미국의 저렴한 고성능 V8엔진을 얹어서 팔 생각을 했던 것이다. 이후 셸비는 영국의 AC사와 미국의 포드자동차를 왕복하면서 양사의 노하우와 장점을 결합한 새로운 차를 만들기로 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바로 AC 코브라이다. AC 코브라는 영국에서 보디와 섀시만 만들어 페인트도 칠하지 않은 상태에서 대서양을 건너가 미국에서 완성차로 조립되었다. 1962년에 첫 선을 보인 AC 코브라 1호차는 4.2리터의 V8 엔진을 탑재했다. 이 차는 덩치만 큰 브리스톨 엔진의 단점을 보완하여 작고 컴팩트하면서도 성능 좋은 스포츠카가 되었다. 영국 레이싱의 오랜 서스펜션 기술과 미국의 고성능엔진이 결합된 AC 코브라는 시속 1백km에 도달하는데 6초 이내, 최고 속도는 2백22km로서 당시로서는 가장 빠른 자동차였다. 그도 그럴 것이 베르나급의 소형차에 7천cc 엔진을 얹었으니 그 힘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비록 AC 코브라는 미국에서 배기가스규제 조항에 걸려 1968년부터 생산을 중단해야 하는 비운을 맞게 되었지만, 그 아름다운 모습과 파워플한 성능을 사랑한 많은 사람들의 요청으로 요즘에도 세계 각 국에서 모방 모델을 만들어 내는 추억속의 명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