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일본과 중국의 사이에 있다. 역사적으로 침략도 당하고 문화적 융합도 겪는 가운데 '사대근린'이란 외교술로 국가와 민족을 지켜오며 무역과 기술 교류를 통해 경제적 실리도 챙겨왔다. 적어도 구한말 쇄국정책으로 경쟁력을 잃어 일본에 강점되기 전까지는…. 중국에 조공을 바치면서도 하정사(賀正使)니, 동지사(冬至使)니 하면서 교역을 했고, 일본에 노략질을 당하는 과정에도 왜관을 설치해 교역과 기술 이전이 이루어졌다. 최근 중국과 일본과 우리 사이에는 여러 가지로 외교적인 문제가 발생해 곤혹스러운 일이 참 많다. 이는 세 국가가 아시아권 또는 세계의 중심국가로 등장하면서 적어도 외교적으로는 수평적 관계가 형성됐기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일본과 중국 사이에 있으면서 아직 그 중심에 있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런데 이제는 경제외교를 통해 그 중심에 설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얼마전 열렸던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는 '한ㆍ중ㆍ일 3국 경제장관회의'를 정례화하기로 합의했다. 역사적으로 획기적인 일이다. 그 동안 한국이 앞장서서 3국 간 경제협력 채널을 만들고자 여러번 시도를 했다. 3년 전쯤 한국은 '한ㆍ중ㆍ일 산업장관회의'를 제안한 적이 있다. 일본도 중국도 취지는 좋다고 했지만 막상 일본 중국이 트라이앵글에 같이 들어가는 것은 끝내 실현되지 않았다. 중국의 뿌리깊은 배일(排日) 감정과 헤게모니 충돌이었을 수도 있다. 일본은 중국에 막대한 무역적자를 보고 있으면서도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있다. 일본은 경제적 대국이지만 외교적으로는 항상 열세였고,이를 극복하기 위해 들고 나온 것이 우선 각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이다. 한국을 징검다리로 해서 중국 및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과도 그 범위를 넓히자는 것이었다. 그러던 차에 이번 APEC 정상회의 과정에서 중국과 ASEAN 회원국들이 자유무역협정체결을 합의했다. 일본과 한국을 빼고…. 또 중국은 드디어 세계무역기구(WTO)에도 가입해 기세가 등등하다. 일본과 중국이 지역경제 통합을 위해 각축을 벌이고 있고,여기에서 한국이 일본과 중국 사이의 중심에 설 기회가 생겼다고 본다. 물론 FTA의 장단점이 있어 신중하게 검토해야 된다. 즉 피하지도 말고, 급히 서두르지도 말아야 한다. 일본의 정부관리나 기업인이나 학자들은 수년 전부터 우리 나라 인사를 만나기만 하면 FTA 체결을 노래하고 다닌다. 각종 관세·비관세 장벽이 철폐돼 무역창출 효과가 있고, 기술과 투자협력이 활성화되는 동태적 효과도 있다는 것이다. 그럴듯 하지만 잘 분석해 보면 오히려 단기적으로는 무역불균형이 더 심화된다. 또 기술이전은 일본정부가 하란다고 해서 기업들이 고분고분 따라줄 분야도 아니다. 허와 실을 따져보아야 하겠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기술협력의 제도적 장치도 만들 수 있고,또 세계 조류가 이러한 때이므로 긍정적으로 검토해볼 만하다. 중국은 한국에 대해 만성적 무역적자 때문에 불만이고, 그 대가로 기술 이전과 투자를 해 주길 바라고 있다. 중앙정부뿐만 아니라 각 지방성에서도 사절단을 보내 한국기업 유치활동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일본에 대해선 정서적으로 좇아다니면서 '손잡읍시다'하는 것 같지는 않다. 차제에 일본이 그렇게 간절히 얻고자 하는 중국과의 연결고리를 맺어주는 대신, 실리적으로 우리는 일본으로부터 첨단기술이 가미된 부품·소재분야 협력을 얻어내고, 중국에 대해서는 현지 투자 확대를 통한 장기 진출기반을 만들어내며, 또 그곳에서 생산된 우리 제품을 일본에 수출하도록 하는 경제실리를 얻어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3각 교류의 핵심은 산업기술이다. 즉 기술의 국제적 유통이다. 만일 우리가 IT 등 주요사업의 기술표준을 통일시키는 일을 주도하면 금상첨화다. 이제 우리가 중심에 나서 삼각형을 만들 절호의 기회다. 경제외교가 따로 없다. ............................................................................. ◇ 이 글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