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기업규제를 완화하는 새 방안이 나왔다. 기업집단 지정제도를 순위에서 자산규모로 바꾸고,출자총액제한제도는 대폭 완화한 것이 골자다. 이 이슈가 다시 부각된 후 논의의 진행을 보면,정부의 대기업정책에 어떤 원칙이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든다. 즉 그간 대기업정책의 목표로 경제력집중 완화니,경쟁력 강화니,투명경영이니,전문경영체제니 하여 온갖 수사가 동원됐지만,대기업정책이 경기조절 수단과 같이 경기에 따라 왔다 갔다 한 느낌이다. 그간 대기업정책은 정부와 재계 간 협상에 의해 결정돼 왔으며,그 협상력은 경기 상황에 민감하다. 이번 논의에서 재계의 입장이 반영될 것이라는 것은 경기상황을 보면 예측 가능한 일이었다. 출자총액제한제도는 90년대 지속돼 오다,경제위기 이후 외국인 M&A에 대비한다는 명분으로 풀어주었다가,무분별한 계열사 확장을 방지하기 위해 다시 도입됐고,이번에는 투자의욕 고취라는 명분으로 대폭 완화됐다. 이런 상황을 보면,도대체 이 제도의 목적은 무엇이고 이 제도의 정책효과를 판단하는 기준은 무엇인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경제정책의 목적은 국민의 복리증진이고,이를 위해서는 기업부분이 활발히 돌아가는 것이 관건이다. 그렇다면 대기업정책의 기본방향은 최대한 기업인들이 기업하기 좋도록 해주되 기업과 관련된 이해당사자,특히 주주들이 피해를 받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이런 상식 수준에서도 도출가능한 원칙은 경제학에서 효율적 지배구조의 조건으로 꼽는 대주주의 존재와 소액주주 권리보호 장치의 병존이라는 조건과도 일치한다. 소액주주들은 평상시 기업을 감시할 유인이 약하기에 기업을 책임질 대주주가 필요한 것이다. 이 효율성 조건이 의미하는 바는,기업은 일단 대주주나 경영자가 기업을 자신의 책임 하에 소신대로 경영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고,다만 이 과정에서 주주 등 이해관련자에게 의도적 피해를 줘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런 원칙을 가지고 대기업정책을 바라 보면 정부와 기업은 무엇을 주고 받아야 하는 지 바로 나온다. 우선 기업경영의 자율성에 관한 사항,크게 보아서는 기업내부 차원에 관련되는 사항에 대해서는 기업의 자율권이 최대한 보장돼야 한다. 그런 것들의 예를 들면,기업 부채비율,출자나 투자,이사회 운영과 구성 등일 것이다. 반면에 경영의 결과가 외부에 영향을 미치는 부분,공정경쟁이나 투자자나 주주의 권익과 관련되는 부분에 대해 기업은 책임을 져야 한다. 가령 경영투명성 보장과 주식투자자에 대한 의무인 공시제도,그리고 소액주주 권익에 필수인 주주대표 소송이나 집단소송제는 현재 수준으로는 불충분하다. 극단적 예로,주주 소송권이나 장부열람권이 미국과 같이 단 한주를 가진 주주에게도 주어지도록 대폭 강화된다면,대신 출자나 이사회 구성 등을 기업 마음대로 하게 해도 된다. 어떤 출자행위가 그 기업 주주들에게 피해를 끼쳤다면 주주들이 당장 소송을 제기할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상장기업들이 출자를 통한 분사를 함부로 못하고 자회사를 만들어도 1백% 지분을 갖는 것은 그런 출자에 대한 규제가 있어서가 아니라,소액주주가 무섭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많은 상장기업들이 이사회의 과반수를 사외이사로 채우는 것은 법이 정한 최소 기준을 맞추기 위해서가 아니라,기업 스스로의 판단에 의해서다. 기업을 하는 것은 일종의 종합예술 행위다. 예술의 생명은 자유다. 기업에도 자유를 주되 남에게 피해만 주지 않도록 하면 된다. 이제 정부는 기업이 남에게 피해를 주는 지를 일일이 감시하기 보다,피해 당사자들이 스스로 권익을 찾게 해야 한다. 이 원칙에서 보아,이번에 정부는 출자제한을 완화하는 대신 주주소송권 등의 강화를 재계로부터 받아내야 한다. 대기업정책을 경기조절 수단처럼 쓰지 말고,일관된 원칙을 한 10년만 견지해 가면 한국의 대기업규제 문제는 현재의 미국과 같이 없어져 있을 것이다. klee1012@plaza.snu.ac.kr .............................................................................. ◇ 이 글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