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정치사에서 검증되지 않은 '정치실험'을 하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이 정치사상 처음으로 임기를 16개월 남기고 민주당 총재직을 포기한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97년 9월 이회창 신한국당 대통령 후보로부터 "당을 떠나라"는 요구를 받고 "내가 만든 당인데 왜 내가 떠나냐"고 하다가 총재직에서 물러난 것과는 사뭇 다르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92년 5월 민자당 대표인 김영삼 전 대통령이 대선 후보로 선출되자 석달이 지난 뒤인 8월 총재직을 그만 뒀으며,전두환 전 대통령도 87년 6월 민정당 차기후보가 된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총재직을 물려줬다. 이같은 전·현직 대통령의 총재직 이양사례는 차기후보 선출전이냐 후냐의 시기만 다를뿐 대통령 임기후반 레임덕에서 비롯됐다는 점은 같다. 김 대통령 또한 마찬가지다. 누가 봐도 이번 여권내 소장파 의원들의 'DJ에 대한 항명'은 10·25 재보선에서의 참패가 도화선이 됐다. 소장파 의원들의 국정쇄신 주장은 국민들 사이에 상당한 설득력을 얻었다. 당 지도부도 민심이반 현상을 부인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김 대통령이 스스로,전직 대통령보다 훨씬 먼저 총재직을 던졌다. 김 대통령은 결단을 내리면서 "오로지 있는 힘을 다해 국정을 수행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국민들이 김 대통령의 '결단'을 높이 평가한 것은 이런 순수성을 높이 샀기 때문이다. 문제는 약속이 아니라 실천이다. 김 대통령은 총재직을 사퇴할 때의 초심(初心)을 잃지 않고 임기를 마쳐야 한다. 김 대통령을 또다시 정치판으로 끌어들이려는 유혹의 움직임은 앞으로 계속될 것이다. 대권 레이스에서 여권내 주자들은 김 대통령의 '등'을 밟고 일어서려고 할 것이다. 이때문에 김 대통령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세속정치의 한가운데로 휩쓸릴 가능성은 여전히 상존하고 있다. 김 대통령이나 여당이 이 유혹을 떨쳐내지 못한다면 이 정치실험은 실패로 끝날 것이다. 실천과정에서 10·25 재보선의 참패를 부른 민초들의 마음을 사는데 실패한다면 김 대통령이나 여권은 '차가운 임기말'을 맞이할 수 있음을 재삼 재사 강조한다. 김영근 정치부 기자 yg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