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3월 교육부장관에 취임한 이해찬 의원은 의욕적 시책으로 '고교교육 정상화 방안'을 내놓는다. 야간자율학습과 보충수업을 없애고 모의고사는 고2때 한번만 친다. 고3때는 아예 실시하지 않는다. 한가지만 잘해도 대학에 갈 수 있도록 한다. 이 제도를 처음 적용받게 되는 당시 중학교 3학년들에게 이는 '복음'이었고 '해방 선언'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들이 이번에 수능시험을 친 이른바 '이해찬 1세대'들이다. 이러한 개방적 분위기 속에서 자라던 이들에게서 언제부터인가 이상한 조짐이 감지되기 시작했다. 고1과 고2를 지나면서 학력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느낌이 포착된 것이다. 급기야 일선 학교에서는 이들의 학력이 '단군 이래 최저수준'이라는 웃지 못할 이야기가 나돌았다. 이 소문을 뒷받침하는 방증도 퍼졌다. 한 유명 사설학원이 최근 이해찬 1세대의 실력을 재기 위해 지난해 고3이 본 모의고사와 똑같은 문제를 냈다. 그러나 이 학원은 결과를 발표하지 못했다. 성적 차이가 너무 심했기 때문이라는 후문이다. 서울시교육청도 지난 4월 모의고사를 실시했지만 당초의 성적공개 방침을 바꿔 대외비로 묻어버렸다.'단군 이래…'는 공공연한 사실로 굳어졌고 83년생 돼지띠들은 이 말을 들으며 학교에 다니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하지만 이해찬 1세대의 비운은 정작 수능일에 닥쳐왔다. 그렇지 않아도 쉬운 시험에 익숙해있던 이들에게 난데없이 '단군 이래 최고 난이도'의 문제가 제시된 것이다. 최상위권도 쩔쩔 맸다는 문제는 그렇다손 치더라도 전혀 생소한 유형,긴 지문 등은 시험 시간 내내 이들을 울분에 휩싸이게 했음이 분명하다. 시험은 어렵게 낼 수도,쉽게 낼 수도 있다. 하지만 교육 당국은 지난해 너무 쉽게 냈다는 여론의 질타를 받은 나머지 이번에는 그 반작용으로 과잉대응한게 아닌가 하는 우려도 없지 않다. 사실 모든 책임은 갈팡질팡하는 교육정책이 짊어져야 마땅하다. 앞뒤 안맞는 교육정책에 이해찬 1세대는 4년간 희롱당한 셈이 됐다. 이제 내년에는 '단군 이래 최저 난이도'의 문제가 나오지 않을까 정말이지 걱정된다. 모든건 다 '도(度)'가 있는 법인데…. 고기완 사회부 기자 dad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