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군정보국 소속 오닐 중위(데미 무어)는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특전단에 들어간다. 오닐이 도중하차하지 않고 혹독한 훈련을 마치자 군당국은 레즈비언으로 몰아 내쫓으려 하지만 무산되고 오닐은 걸프전에 참가, 혁혁한 공을 세운다. 영화 'GI 제인'은 여군에게 더이상 한계는 없음을 보여준다. 영화가 현실을 어느 정도 반영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실제 미국에선 여군이 전체 장병의 13%에 달한다. 1972년 세계 최초의 여군 장성인 안나 헤이스(Anna M Hays)가 배출됐고 97년엔 클로디아 케네디 소장이 중장으로 진급했다. 국내에서도 첫 여군 장성이 탄생되리라 한다. 50년 9월 여군 창설 이후 51년만의 경사다. 여군의 역사는 순탄했다고 보기 어렵다. 80년대말까지 출산하면 전역해야 했고, 병과및 직위 제한(대령 2년차)이 풀린 것도 90년이 돼서였다. 그러나 90년대 후반 들어 상황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97년 공군사관학교를 시작으로 98년 육사, 99년 해사가 여성에게 개방됐고 육ㆍ해ㆍ공군 모두 여군학사장교를 선발하기 시작했다. 특히 국방부가 지난해 0.3%에 불과한 여군을 2020년 1%이상으로 늘린다는 계획 아래 여군의 인사관련 방침을 정비함으로써 여군도 병력 관리및 경계등 모든 부대활동을 지휘 감독할 수 있게 됐다. 군수 인사 출납 회계등 민원부서에도 배치되고 헌병 병과의 경우 행사지원 위주에서 전문 수사·경호 업무로 영역이 확대됐다. 해군에선 여성 장교를 해군 창설 55년만에 처음 잠수함에 배치했다. 여군에 대한 인식과 대우가 이처럼 달라지면서 학사장교와 여군하사관 지원자 모두 폭증했다. 지난 6월 특전사 여군 하사관 모집의 경쟁률이 81대 1에 달했다는 건 여군의 인기를 전하고도 남는다. 장성이 되려면 논두렁 정기라도 타고 나야 한다고 한다. 별을 달면 장성기와 삼정도, 자동차 번호판에 붙이는 성판(星板)등을 받고 사후 국립묘지 장성 묘역에 안장된다. 장군은 모든 군인의 꿈이거니와 그만큼 막중한 책임과 사명감이 부여된다. 많은 여성들의 염원 끝에 탄생되는 첫 여성장군이 여군은 물론 모든 군인의 표상이 되기를 기원한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