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국가고시를 근본적으로 고쳐나가겠다는 발표가 있었다. 외무·행정·기술 등 고등고시의 1차시험에 공직 적격성 테스트(PSAT)를 도입하고,영어시험은 토익·토플 등 어학능력 성적으로 대체하는 등 제도를 전면 개편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근본적'이고 '전면적'이라는 개편안을 다시 잘 살펴 보아도 국가고시에 자연과학을 포함시킨다는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세상은 자연과학적 교양을 더욱 필요로 하는데,한국의 고시제도는 여전히 문과(文科) 일변도다. 이를 보면서 두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하나는 5백년 전의 이황(李滉)이며,다른 하나는 10여년 전 어느 정치학 교수의 시론(時論)이다. 이황(1501∼1570)은 지금부터 꼭 5백년 전인 1501년 태어났다. 이름보다 호 퇴계(退溪)로 더욱 유명한 그는 우리가 늘 사용하는 1천원짜리 종이 돈에 그의 초상을 넣고 있을 정도다. 분명히 유교(儒敎)는 위대한 가르침이다. 그런데 공자와 맹자 이후 몇고비를 겪으며 변화해 오던 유교 전통이 송(宋)나라 때의 주자(朱子·1130∼1200)를 거치면서 시들해져 갔다. 그래서 가끔 우리 선조들은 조선의 이자(李子)가 주자를 이은 대유학자거니 여겨 온 것도 사실이다. 또 조선이야말로 진짜 유교국이었다는 해석도 한다. 올해 그의 탄생 5백주년을 기념하는 여러 행사가 열리고 있음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그의 학문 세계를 살펴 보면 오늘 우리가 하는 과학에 관한 내용은 거의 없다. 왜 그보다 한세기를 앞선 세종(世宗)은 과학 발달에 탁월하게 기여했는데,1백년 뒤의 이황은 과학에 도통 관심이 없었던 걸까? 조선왕조의 4번째 임금 세종시대에는 수많은 과학적 업적이 쏟아져 나왔다. 측우기에서 '칠정산(七政算)','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에서 농학 연구,아악(雅樂)의 과학적 정리까지 온갖 과학적 활동이 눈부시다. 하지만 그로부터 1백년이 지난 16세기 전반의 이황은 한창 나이에 과학에는 관심을 거의 보이지 않은 채,신유학(新儒學)의 철학적 탐구에 심혈을 기울였다. 이황을 대표하는 저술 가운데 '성학십도(聖學十圖)'라는 열폭짜리 그림이 있다. 이 그림은 신유학 또는 주자학(朱子學)의 알맹이를 알기 쉽게 풀이해 설명하는 10장의 그림으로 과학과는 거리가 있다. 첫장의 제목이 태극도(太極圖)이지만,이것은 그림과 설명 모두가 송나라 때의 중국 것이기도 하며,꼭 과학 내용이라 하기도 어렵다. 어쨌거나 이황의 학문이란 주로 철학적이고 윤리적인 정치사상을 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학문의 균형은 중요하다. 이황이 철학을 할 때 다른 학자는 자연과학을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황과 그의 동시대 학자들은 하나같이 문과공부만 하고 이과공부는 하지 않았다. 조선시대의 모든 양반 지도층은 문과공부만 하고 자연과학은 거들떠보지 않았다. 문제는 21세기 우리의 세상이다. 오늘날 교양인은 자연과학적 소양을 갖추지 않고서는 살아가기 어려워지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오늘도 여전히 퇴계식 공부만 추구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국가고시 개편안을 보면서 떠오른 또 한가지 생각은 10여년 전 어느 정치학자의 시론이다. 그는 사법고시에 과학사(科學史)를 교양필수 과목으로 넣자고 신문 칼럼에 쓴 적이 있었다. 그런 생각을 늘 갖고 있던 나로서는 여간 고마웠던 것이 아니다. 그 분은 뒤에 국무총리를 지냈지만,자기 주장을 실현시키느라 애썼다는 소리는 듣지 못했다. 아마 그저 한번 해 본 소리였을지 모른다. 또 이 자랑스런 민주사회에서 총리라고 사법고시 과목을 자기 뜻대로 바꿀 수는 없을 것도 같다. 그렇긴 하지만 퇴계 5백년을 생각하면서,미래 지도자들의 교양 문제가 걱정스럽다.지식인의 교양이란 시대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고,과학시대라는 지금은 분명히 과학문맹(science illiteracy)이 많아선 안될 듯한데,우리는 국가고시를 통해 과학문맹들을 양산해가고 있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국가고시에 과학사 정도를 교양필수로 넣으면 과학문맹을 퇴치하는데 기여하련만 국무총리도 바꾸지 못하는 고시제도를 나같은 백면서생(白面書生)이 어쩌겠는가. parkstar@unite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