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상면 국순당 회장(77)은 지난 50년간 오직 '누룩' 연구에 몰두해 왔다. 1948년 경북대학교 농화학과에 입학한 그는 동료들과 미생물연구반을 조직하면서부터 누룩 연구에 파묻혔다. 그러나 그는 연구실에만 앉아선 좋은 술을 빚어낼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고심하던 그는 사돈인 전학수씨의 소개로 당시 삼성그룹 창업자인 이병철 회장이 경영하던 조선양조장에서 일할 수 있게 됐다. 그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새벽부터 양조장에 나가 공장 근로자들과 함께 팔을 걷어붙인 채 누룩을 나르고 실내 청소도 했다. 거대한 술통에 발효가 시작되던 날 그는 인부 두 명과 함께 술통 위에 올라가 '도봉'이라고 불리는 나무막대기로 휘저어주는 작업을 하게 됐다. 발효된 술통 속을 젓는 일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온 힘을 다해 도봉을 집어넣고 잡아당기다 그만 몸의 중심을 잃었다. 순간 술통 속으로 빠지고 말았다. 발효중인 술통에 빠지면 이산화탄소에 질식돼 목숨을 잃을 수 있었다. 이 사실을 알고 있던 그는 가능한 한 숨을 크게 들이켜지 않은 채 동료 인부의 도움으로 술통 속을 겨우 빠져나왔다. 본래 술을 한잔도 못 마시는 그였지만 술통을 빠져나온 뒤부터 술과는 영원히 끊을 수 없는 인연을 맺게 됐다. 이어 그는 쌀을 누룩으로 용해하고 당화(糖化)할 수 있는 곰팡이의 개발에 몰두했다. 이 결과로 무증자효소 제조특허를 얻는 등 수많은 특허를 받았다. 순천 누룩공장에 한국미생물연구소를 설립한 그는 '쌀'로 빚은 세계 최고의 술을 만드는 데 온 힘을 쏟았다. 그는 1988년 한국에선 전통주라고 내놓을 만한 술이 없다는 생각에 양조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그때 개발해 낸 술이 '백세주'다. 이 술은 '보신탕에 적격인 건강주'라는 캐치프레이즈가 적중해 잘 팔려 나갔다. 백세주를 만드는 회사인 국순당은 현재 배 회장의 맏아들인 배중호 사장(48)이 맡고 있다. 대구 기린양조장에서 태어났으며 국순당이란 회사 이름을 짓기도 한 둘째 아들 배영호 사장(42)은 아버지의 이름을 딴 회사를 만들어 나갔다. '산사춘'으로 유명한 '배상면주가'가 그 회사다. 백세주와 산사춘이 이처럼 명성을 떨치고 있는데도 배 회장은 아직 한가지 아쉬움이 남아 있다. 평생의 소원인 쌀로 빚은 고급 탁주를 만들어내지 못한 것이다. 배 회장은 '탁주란 원래 저급 술이 아니었다'고 강조한다. 탁주는 일제 때 양조장에서 물을 부어 묽게 만들면서부터 저급주가 됐다는 것이다. 올들어 그는 술통에 빠지면서까지 끊임없이 연구해온 누룩 특허와 탁주제조 특허를 토대로 알코올 16%의 고급 탁주를 개발해 냈다. 이 술의 이름은 '부자(富者)'다. 무공해 국산 쌀로만 빚은 이 탁주는 완숙한 라거(Lager) 술이어서 머리가 아프거나 숙취가 없는 것이 장점이라고 한다. 암 고혈압 비만 당뇨병 등에 예방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이 '부자'는 배 회장의 외동딸인 배혜정 사장이 사업화해 이번주 초에 시판했다. '배혜정 누룩도가'라는 회사명으로 벤처 창업을 했다. 백세주를 마시면 장수하고 이 '부자'를 마시면 부자가 될 수 있을까. (02)409-6909 이치구 전문기자 rh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