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됨됨이를 알아보는 것만큼 어려운 일도 없다. 그것은 성군인 요(堯)임금도 어렵게 여겼다는 일이다. 그러나 공자의 말처럼 사람이 어떻게 자신을 숨길 수 있겠는가. 사람의 행동을 자세히 관찰하면 그의 사람 됨됨이는 자연히 드러나게 마련이다. 사람은 궁극적으로 자신을 숨길 수 없는 존재다. 이런 관점에서 선조들은 인물평가기준을 세웠고 이에 따라 인재를 골라 썼다. 조선시대 인물의 일반적 판단기준은 '신언서판(身言書判)'이었다. 효성과 충성이라는 유교적 덕목이 소양이나 자질의 기본바탕이 되고 있음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하지만 이같은 전통적 인물판단기준은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공직의 필요조건은 될 수 있었지만 필요충분조건은 되지 못했다. 유교의 교화기능이 거의 마비되는 조선말에 오면 과거에 급제해 공직에 발을 들여 놓은 벼슬아치들의 부패가 극심해져 벼슬을 팔고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서민을 수탈하는 관료들이 속출했다. 이 무렵 실학자 혜강(惠岡) 최한기(崔漢綺·1803~77)가 내놓은 책이 '인정(人政)'(1860년)이다. 그는 이 책에서 인물을 평가하는 원칙을 체계적으로 제시했다. 먼저 용모를 통해 개인의 기품과 자질을 분별한 뒤 능력을 보고 그것이 도덕성에 합치하는지 여부에 따라 객관적 인물평가도표인 '4과열표(四科列表)'를 만들었다. 항목이 1천24개에 이르고 평가가 점수로 나타나도록 빈틈없이 짜여있다. 한 국가의 성쇠가 공직에 어떤 인물을 쓰느냐에 달려있다고 믿었던 혜강의 신념에서 나온 이 인간평가기준은 당시 사회에서 전혀 주목받지 못했다. 정부가 외무 행정 기술 등 고등고시 1차시험에 공직자로서 필요한 소양 자질을 종합평가하는 공직적격성테스트를 도입하기로 했다는 소식이다. 문제는 도덕성 지도력 행정능력 등 극히 일반적 평가기준만 적용된다면 어느 정도 객관성을 지닐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혜강의 평가도표가 얼마나 타당성을 지니고 있는지는 검토돼야겠지만 외국학설 뿐만 아니라 전통학설도 참조됐으면 한다. 고광직 논설위원 kjk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