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정조 때인 1782년의 일이다. 웅천에 사는 18세의 처녀 김기단이 동네 양반 이창범에게 겁탈당했다는 소문이 퍼지자 목을 매 자살했다. 관찰사가 이창범을 잡아들여 문초한 결과 겁탈하려 했으나 욕심을 채우지는 못했다는 자백을 받아 강간미수죄로 형조에 넘겼다. 형조에서는 그를 강간죄로 몰아 왕에게 사형으로 처단할 것을 품신했다. 사건의 내용을 꼼꼼히 재검토한 정조의 판결은 이랬다. "사람이 죽고 사는 갈림길에서 정말 강간을 했느냐 미수에 그쳤느냐를 헤아리지 않고 단안을 내린다는 것은 원칙에 어긋난다. 사건의 핵심을 밝혀내지 못하고 사형시키기에만 급급한다면 기단이의 정조를 더럽히기만 하는 것이다. 나의 판단으로는 강간은 미수에 그쳤다. 창범은 장형으로 다스린 뒤 함경도로 정배하라" 정조는 이 경우 가해자를 사형에 처한다는 것은 자살로 정절을 지키려한 여인에게 거듭 누명을 씌우는 꼴이 되고 가해자가 죄를 뉘우칠 기회마저 박탈하는 쓸모없는 극형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피는 피로써 씻어야 한다는 응보(應報)를 목적으로 일벌백계(一罰百戒)의 발상에서 시작된 것이 사형제도다. 18세기 후반 이탈리아의 베카리아가 사형폐지를 주장한 이래 사형제도 존폐문제는 끊임없이 논쟁거리가 돼 왔다. 폐지론자들은 창조주 외에는 어느 누구도 박탈할 수 없는 존엄한 것이 인간의 생명이며 종신형보다 사형이 범죄억제효과가 있는 것도 아니라고 역설한다. 게다가 인간의 편견과 실수 등에 의해 잘못 적용될 가능성이 많은 또 하나의 살인이라는 것이다. 유지론자들은 감상적으로 흉악범의 인권을 지켜주기보다 우선 국민과 사회를 보호함으로써 그들의 발호를 막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지난 6월 현재 한국 미국(50개주중 38개주) 일본 등 87개국이 사형제도를 유지하고 있고 1백8개국이 폐지했거나 형 집행을 하지 않고 있다. 폐지론이 조금씩 우세해 가는 추세다. '사형제도폐지 특별법안'이 의원 1백55명의 발의로 국회에 제출됐다. 범종교계의 지원을 받고 있는 이 법안처리의 귀추가 주목된다. 고광직 논설위원 kjk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