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달 1일 출범하는 국민.주택 합병은행의 총사령관인 김정태 합병은행장. 그만큼 세인의 관심을 끄는 경영인도 드물다. 한국의 금융시장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초대형 은행의 최고경영자라는 점에서만이 아니다. 위기를 기회로 삼는 경영전략과 금융개혁의 선도역할을 하고 있는 김 행장의 경영스타일은 금융계 뿐만 아니라 학계에서도 연구대상이 되고 있다. 그에게 경영인으로서 성공비결을 물었더니 그는 "운칠기삼(運七技三)이었을 뿐"이라고 겸손하게 답했다. 하지만 그가 남긴 예화들은 운보다는 역시 뛰어난 경영감각이 성공의 비결임을 보여준다. 미 테러사건으로 연일 국내 주가가 폭락중이던 지난달 17일. 긴급 임원회의를 소집한 김 행장은 선도은행으로서 증시 부양에 나서야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리고는 자금을 어느 정도 투입하면 좋겠느냐고 물었다. 담당 실무팀장은 "2백억~3백억원이면 되지 않겠습니까"라고 답변했다. 김 행장은 "그 정도로 되겠나. 1조원을 투입하자"고 제안했다. 임원들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느라 찬물을 들이켜야 했다. 1조원을 투입한 성과는 컸다. 당시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지만 주택은행은 지난 22일 현재 2백억원대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 김 행장의 예측력과 추진력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는 대우여신 정리건.지난 1998년8월 김 행장이 부임했을 당시 주택은행은 1조8천억원가량을 대우그룹에 빌려주고 있었다. 김 행장은 당장 여신감축에 나서 1999년8월 대우그룹이 무너지기 직전까지 1조5천억원 가량을 줄였다. 은행장으로 취임한 직후 그가 가장 먼저 취한 조치는 행장 전용 엘리베이터와 수행비서를 없앤 일이다. 관료냄새를 털어낸 것이다. 여신규정도 뜯어고쳤다. "당시 은행 규정은 담보를 잡고 돈을 빌려주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고 돼있더라구요. 그래서 신용을 원칙으로 하고 담보가 있으면 더 빌려줄 수 있다로 고쳤지요" 그 결과 지난해 주택은행의 중소기업 신규대출중 79%가 신용대출로 이뤄졌다. 김 행장은 인사에 관해서는 철저하게 자신의 원칙을 지키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현 김영일 주택은행 부행장의 발탁.김 행장 부임시 리스크관리실장이었던 김 부행장은 '대우여신관련 보고서'를 행장에게 보고했다. 이 보고서를 바탕으로 주택은행은 대우여신 줄이기에 성공했다. 김 행장은 이때부터 김 부행장의 능력을 인정하고 1년6개월만에 실장(차장급)에서 부행장으로 승진시켰다. 김 행장의 인사전략에서 또 하나의 특징은 철저한 권한이양이다. 사업본부제로 조직을 개편하고 책임경영원칙을 세웠다. 김 행장이 전하는 책임경영의 사례 하나. "행장 부임후 1년만에 임원들에게 처음으로 성과급 명목으로 돈을 줬어요. 봉투에 5천만원, 1억원 등을 나눠서 지급했는데 한 임원이 5천만원 봉투를 들고 와서 이렇게 많은 성과급을 받은 적이 없다고 고마워하더라구요. 그래서 당신보다 더 많은 돈을 받은 임원도 있는데 당신은 그정도 성과밖에 못 올린 것이니 집에 가서 쉬라고 해 사표를 받았지요" 김 행장은 '법대로 하자'는 원칙주의자다. 그는 행장으로 부임하자마자 인력구조조정을 놓고 노조와 정면대응했다. 밀가루폭탄세례도 받았다. 이런 반발 속에 김 행장은 연봉제와 팀제 도입을 위해서 1백억원의 돈을 들여 맥킨지로부터 컨설팅도 받았다. "누군들 답이 뻔한 컨설팅을 받으려고 돈을 그렇게 쓰고 싶었겠어요. 노조가 행장 말을 받아들이지 않으니 어쩔수 없이 외국컨설팅사의 이름을 빌린 거지요" 단 불법적인 행위는 결코 용납하지 않는다. 지난해 국민 주택 합병발표후 파업을 주도했던 주택은행 노조위원장은 현재 구속중이다. "능력이 있는 직원은 더 많은 연봉을 받을 수 있도록 제도도 고쳤고 일할 수 있는 모범기업을 만들고 있다. 무조건적인 균등주의나 조합이기주의는 버려야 한다"는 것이 김 행장이 바라는 노조 모습이다. 김 행장의 아이디어 원천은 끊임없는 독서다. 특히 김 행장은 국내 모든 신문의 칼럼을 빠짐없이 읽는 것으로 유명하다. 시간이 없기 때문에 출퇴근 시간때 신문스크랩을 한아름씩 안고 다닌다. 어두운 차 안에서 읽다 보니 극심한 난시가 되기까지 했다. 김 행장은 "기업이나 사람이나 마찬가지다. 가만히 있으면 현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그러나 사실상 현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퇴보와 마찬가지다. 변화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고 강조한다. 김 행장이 보는 '경영인의 실패'란 '자신이 몸담고 있는 조직이 생존(발전)하지 못하는 것'이다. 김 행장이 그토록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하는 것도 그런 소신에서다. 김준현 기자 kimjh@hankyung.com --------------------------------------------------------------- [ 약력 ] 1947년 8월15일 광주 출생 광주제일고 졸업 서울대 경영학과, 경영대학원 졸업 80년 대신증권 상무 82년 동원증권 상무이사 91년 동원창업투자 대표이사 97년 동원증권 대표이사 98년 주택은행장 2001년 국민주택 합병은행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