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적자금을 지원받은 은행들이 임금 인상을 결정했다. 한빛은행은 10월부터 임금을 평균 8.9% 올리기로 했고 조흥.서울은행은 내년 1월부터 각각 9.4%, 8.4% 임금을 인상한다. 이에 따라 공적자금 회수가 요원한 상태에서 국민의 혈세를 지원 받은 은행들이 성급히 허리띠를 풀고 있다는 비난이 일고 있다. 그러나 이 은행들은 임금 인상 요구가 지나치지 않다고 강조한다. 외환위기 이후 임금을 삭감 또는 동결해 왔기에 현재 이들의 임금은 다른 은행보다 30%정도 낮은 수준이다. 저임금으로 인해 양질의 직원을 확보할 수 없고 사기가 떨어졌기 때문에 임금인상이 오히려 수익성 향상이나 공적자금 회수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이다. 이들의 주장은 경제학에서 말하는 '효율임금이론(efficiency wage theory)'에 해당한다. 일반적으로는 임금이 올라가면 생산비용이 늘어 기업 이윤이 감소한다. 그러나 효율임금이론에 따르면 임금 상승은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효과도 갖는다. 만일 생산성 향상 효과가 비용증가 효과보다 크다면 임금이 오르더라도 이윤이 증가할 수 있다. 높은 임금을 지불하면 생산성이 높아지는 이유는 근로자의 이직과 태업 성향과 관련이 있다. 임금이 낮아지면 능력있는 근로자들부터 회사를 그만두게 될 뿐 아니라 근로자의 태만도 막기 어렵다. 일을 게을리 하다 적발돼도 비슷한 임금을 주는 직장을 쉽게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럴 때 임금을 올리면 예상 외의 효과를 볼 수 있다. 포드자동차사를 설립한 헨리 포드의 임금 정책이 좋은 예다. 포드는 1914년 컨베이어 시스템을 도입해 고가품이던 자동차를 대량 생산하기 시작했다. 엄청난 사업 성공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고민거리가 하나 있었다. 컨베이어 시스템의 도입으로 단순 반복 작업이 늘어나자 싫증을 느낀 근로자의 이직과 태업이 크게 증가한 것이다. 이에 포드는 일당을 5달러로 올렸다. 당시 평균 일당이 2달러였던 것을 고려할 때 실로 파격적인 인상이었다. 임금이 오르자 해고를 두려워한 근로자들이 열심히 일을 했고 포드 공장 앞은 구직자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그 해 포드사는 임금인상에도 불구하고 큰 이윤을 벌었다. 과연 효율임금이론이 공적자금 투하 은행의 주장을 합리화할 수 있을까. 아쉽게도 포드사의 예 이외에는 효율임금이론을 지지하는 증거를 찾기 어렵다.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효율임금이론이 현실적이지 못하다고 비판한다. 태업이나 이직이 문제라면 기업가는 임금상승이 아닌 다른 방법을 사용할 수 있다. 태업을 막기 위해서는 감시 카메라를 설치하면 되고, 근로 의욕이 문제되면 성과급 계약을 할 수 있다. 한번 올라 가면 다시 내려오기 어려운 임금을 인상하기보다 다른 방법이 매력적이란 지적이다. 국민정서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사기진작을 위해 임금인상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이론적으로 정당화하기 어렵다. 백 번 양보해 임금을 올리더라도 성과급을 조정하는 편이 바람직하다. 이 경우에도 경영개선 성과가 공적자금 지원 덕분인지 자체 노력의 결과인지 명확히 구분한 뒤 후자의 경우에만 성과급이 지급돼야 한다. 공적자금의 최대 수혜자가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것은 너무 때이른 감이 있다. <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한국채권硏 이사 rhee5@plaza.snu.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