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우 < 우리기술 사장 dwkim@wooritg.com > 미국사람 필립 제이슨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한국의 독립운동가 서재필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두 사람이 동일 인물이고 그가 해방 후에도 자신을 필립 제이슨으로 불러주기를 원했다면 그는 독립운동가 서재필이 아니라 미국사람 필립 제이슨이 더 맞지 않을까. 후배 한 사람이 잠시 미국에 다녀왔다. 알고 보니 부인과 함께 애를 낳으러 갔다고 한다. 요즘 부유층들 사이에서 유행한다는 이른바 미국 국적 취득용 출산여행이었던 것이다. 그 후배나 부인 모두 우리 사회에서 모자람 없이 자랐고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다. 하지만 필립 제이슨처럼 이 나라 국적이 맘에 걸렸던 모양이다. 부지런한 부모 덕분에 그들의 아이는 어수선한 이 땅을 언제든지 벗어날 수 있는 이중국적을 가지게 되었다. 이중국적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작년에는 유명 대학 총장을 지낸 인사가 교육부장관에 취임했다가 이중국적 때문에 불명예퇴진을 해야 했다. 그럼에도 온갖 수단을 동원해 이중국적을 취득하는 이유는 재외국민의 지위에 관한 특별법 덕택에 이중국적자도 사실상 권리는 내국민과 별 차이가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중국적의 신분은 이미 오래 전에 한국의 대표적 독립운동가가 굳이 또 하나의 국적을 가지길 원할 정도록 이 땅에서는 매력적인 것이다. 나라간의 경계가 갈수록 희미해져가는 마당에 이중국적이 과연 문제가 될 수 있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중국적을 취득하는 사람들이 주로 우리 사회에서 가장 많은 혜택을 누리고 사는 계층이라면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또 이중국적이 주로 초강대국 미국국적에 집중돼 있고 병역의무라든가 여러 측면에서 특별한 혜택을 얻어낼 수 있는 통로로 이용될 수 있다면 평등권 측면에서도 작은 문제가 아니다. 권리와 그에 따른 책임과 의무는 한 사회의 근본을 이루는 가치관계의 핵심이 된다고 본다. 의무는 저버리고 권리만 행사하려고 드는 사람들이 활보하는 사회에 희망을 걸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이 땅을 떠날 용기도,이 땅을 지킬 의지도 없으면서 이 땅에 기생하는 사람들이 사회 주류로 행세하는 나라에서 그 주류들에게 어떤 책임있는 행동을 기대할 수 있을까. 많은 전문가들이 예측하는 대로 얼마 지나지 않아 중국이 미국을 능가하는 세계 초강대국으로 부상하면 그때는 이중국적자들이 중국으로 몰려갈 것인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