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테러참사가 일어난 지 한달보름이 지난 지금,세계 패션계는 몇가지 큰 변화를 겪고 있다. 그 중 하나가 트렌드의 갑작스런 변화다. 이번 겨울시즌 인기를 얻으리라 예상했던 밀리터리룩이 철저하게 외면당하고 있다. 밀리터리룩은 국내에서는 별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지만 유럽과 미국 패션시장에서는 90년대 초반 이후 매년 꾸준히 선보여지고 있는 트렌드다. 올해도 역시 존 갈리아노,마크 제이콥스 등의 유명 디자이너들은 카무플라주 프린트(얼룩덜룩한 문양)와 견장,금속단추 등 군복 장식에 특별한 애정을 나타냈다. 심지어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병사들의 복장과 비슷한 옷을 내놓은 브랜드도 있었다. 그러나 얼마전까지 뉴욕과 런던의 패션매장을 장식했던 군복풍 옷들은 테러사건 발발 이후 모두 창고에 처박히는 신세로 전락했다. 테러의 공포를 연상시킨다는 이유다. 한 패션전문지에서는 '군대복 스타일의 의상을 선보였던 디자이너들은 이번 사태에 대해 일련의 죄의식까지 느끼고 있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매년 밀리터리룩을 컬렉션의 중심 테마로 내세웠던 디자이너 라프 시몬즈는 요즘 자신의 작품을 보는 것이 역겹다고 고백했다고 한다. 지난 시즌 하이재커풍 두건과 총탄,금속제 해골장식이 달린 벨트를 무대에 올렸던 그가 이제 자신은 평화주의자며 테러리즘을 미화한 적이 없다고 주장하는 등 부정적인 이미지 씻기에 부산하다는 내용이다. 내년 봄 패션도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9월11일 이전 열렸던 뉴욕컬렉션에서는 2002년 봄에는 전세계 지구촌의 전통의상이 유행의 전면에 부상할 것으로 예상됐다. 중국 일본 인도뿐 아니라 중앙아시아 지역의 민속의상도 패션쇼의 주제로 떠올랐다. 뉴욕에 이은 파리와 밀라노 컬렉션에 참가하는 디자이너들도 이와 비슷한 옷을 선보일 예정이었다. 그러나 테러사태 이후 열린 패션쇼를 보면 아랍 민속의상풍 옷은 그 자취를 찾을 수 없다. 애초 아랍풍 옷을 준비했던 디자이너들은 재빨리 인디언이나 유럽 민속풍 패션으로 대체했다는 풍문이다. 이는 모두 패션업계의 빅바이어인 미국 유통업자들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서다. 제아무리 멋진 디자인이라고 해도 중동지역을 연상시키는 옷은 당분간 미국시장에서 장사하기 힘들 전망이다. 반면 성조기를 이용한 디자인은 미국시장에서 환영받을 것으로 보인다. 랄프로렌 도나카렌 등 미국 브랜드뿐만이 아니다. D&G 에스까다 등 유럽의 브랜드들도 벌써부터 성조기를 모티브로 활용한 옷과 매장 디스플레이를 선보이고 있다. 설현정 기자 s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