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와 21세기를 걸쳐 사는 한 경영인으로서 이 시대의 흐름을 보면 한마디로 난감하다. 너무 빠르게 변하는 경영환경과 경제여건도 그렇지만,난해하여 이해하기 어려운 세대간의 코드와 융합,종잡을 수 없는 소비자들의 변화,기술의 발전과 국가 간 역학관계,한치 앞도 내다보기 어려운 국내외의 각종 돌발 변수 등이 그렇다. 지난 9월11일 뉴욕 국제무역센터 등에 대한 테러 대참사는 세계 각국의 항공산업을 비롯 레저 호텔 관광산업 등에 이미 큰 타격을 주었지만,앞으로도 후유증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세계경제는 그렇지 않아도 침체국면에 돌입하고 있었는데,테러 사건은 이를 한층 가속화시키고 있다. 지난 50∼60년 간은 인류 역사상 그 어느 연대보다 문명의 발전 속도가 빨라 사회변화가 극심했던 시대다. 그래서 고개라는 고개는 다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은 또 어떤 난제가 닥쳐 올 것이며,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타개해 나갈까'하는 걱정이 엄습,저절로 기도를 하게 된다. 그런데 이 같은 '혼돈의 시대를 살아가는 지혜'를 얼마전 한국경제신문의 '닥치는 대로 산다'라는 한경에세이에서 찾았다. 에세이의 필자는 1백세에 가까운 어머니를 모시고 있는데,어느 날 살아가는 일에 대해 걱정하니 "얘,뭐가 걱정이냐? 닥치는 대로 사는거지"라는 말씀을 듣는다. 이 말은 산을 만나면 산을 넘고,물을 만나면 물을 건너며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아오신 우리 어머니들 삶의 자세를 보여 주는 것으로서,뭉클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어느 때부터인가 사람들이 일을 너무 쉽게 포기하는 현상을 자주 본다. 또 자기중심적이고 물질적인 욕망에 사로잡혀 있으며,부모와 형제자매,국가와 민족 같은 우리의 주체들에 대한 고마움을 잊고 산다. 이는 물과 공기의 소중함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사는 것과 똑같다. 나의 부모는 모두 9남매를 낳아 키우셨다. 아홉아이의 뒷바라지를 다 하려니 해야 할 일이 얼마나 많았으랴.그런데도 싫다거나 힘들다는 내색을 하신 적이 없다. 9남매에게 살아가는 방법을 몸소 보여 주었을 뿐 아니라,어떤 어려움이 닥치면 큰 바람막이처럼 '부모의 자리'를 든든하게 지키셨다. 그 같은 부모의 모습은 우리들이 자라 사회생활을 할 때 부닥쳐 온 수많은 난관을 극복하는 데 큰 힘이 됐다. 올들어 중국을 제외하고는 미국 일본 유럽 아시아의 모든 나라가 2% 내지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하게 되는 이 경제난국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6천여명의 무고한 인명이 희생된 테러 사건 이후 아프가니스탄과의 전쟁 및 위축된 소비심리로 인한 미국경제의 침체에서 오는 것일까? 또는 소재·부품 등 경제적 의존도가 높은 일본의 장기 불황과 유럽의 경제블록화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우리의 구조적 문제점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그도 아니면 경제와 민생은 외면한 채 정쟁만 일삼는 정치권의 한계,또는 남북한의 갑작스러운 해빙 분위기에 따른 이데올로기의 혼돈,가진 자와 못가진 자의 갈등,교육·의료 문제 등을 둘러싼 갈등에서 오는 것일까? 아닐 것이다. 우리 모두 '닥치는 대로 살겠다'는 각오와 희생이 부족한 결과일 것이다. 자식을 위해 어머니가 희생하는 그러한 열정이 없고,또 그 어떤 힘든 일이든 닥치는 대로 해보겠다는 악착같은 삶의 의지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시민들의 소비와 기업들의 신규 투자가 급속히 줄어들고,수출이 계속 감소 추세를 보여 올해 성장률이 당초 4%선에서 2%대로 크게 위축되는 본격 침체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의 출퇴근 길인 남산 1호터널과 한남대교는 늘 엄청난 승용차들로 정체현상을 빚는다. 남의 탓,주변여건 탓,사회 탓을 하기 전에 내 스스로 그 문제를 풀기 위해 적극적으로 대응했는가. 험준한 고개를 넘고,급류를 건너며,가시덩굴을 헤쳐 나가듯이 대처했는가. 그 같은 지혜와 의지와 용기로 주주들을 위하고,사원들을 대하고,고객들을 존경했는가.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아들의 두손을 꼭 잡고 "얘야,하루하루 닥치는 대로 살면 되지,뭘 그리 걱정이니"라는 어머니 말씀이 이 경제위기 시대를 살아가는 '진리'처럼 들려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