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작가 E 웨스턴은 '렌즈가 눈보다 더 잘 본다'고 말했다. 사진의 물리적 정확성이 인간 의식이 못미치는 곳까지 반영한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L 모호이너지는 '사진의 기록성에 의해 사물의 순수객관적 파악'이 가능해졌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오늘날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없다. 아날로그시대에도 이미지 선택,사진 수정,카메라 앵글,사진 프레임및 조명,배경 설정 등을 통해 사실을 바꿀 수 있었거니와 디지털화는 확고부동한 증거로서 사진의 위상 자체를 위협한다. 라이프의 사진기자 피터 하우는 일찍이 "누군가가 e메일을 통해 미얀마의 대량학살 사진을 보냈어도 그걸로 사건이 진짜 일어났는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그래도 보도사진의 힘은 여전히 막강하다. 지난해 AP기자 알란 디아즈가 찍은 쿠바소년 엘리안 곤살레스의 강제구인 사진은 세계인의 뇌리에 강한 인상을 남겼거니와 뉴욕 쌍둥이빌딩 붕괴 후 먼지를 뒤집어쓴 채 질린 얼굴로 허겁지겁 달리는 사람들 사진은 로댕의 조각 '칼레의 시민'을 연상시키면서 보는 사람들의 말을 앗았다. 뿐인가. 금방이라도 벗겨질 듯 크고 해진 옷을 입은 아프간 소년이 주전자를 든채 힘없이 걸어가는 모습은 전쟁의 참담함을 수만마디 말보다 더 절절하게 보여준다. 사진은 이처럼 과거 또는 먼 곳에서 발생한 사건을 눈앞에서 일어난 것처럼 보여줌으로써 수용자로 하여금 직접 그 일을 겪는 것처럼 느끼게 한다. 한장의 사진이 역사를 바꾸는 건 이 때문이다. 실제 지난 60년 눈에 최루탄이 박힌 김주열의 시체사진은 자유당정권의 몰락을 가져왔고, 68년 에드 애덤스가 베트남에서 찍은 '노상 즉결처형' 사진은 미국내 반전운동을 격화시켰다. 오늘날 보도사진에선 표현(이미지)이 기록(사실성)이상 중시된다. 프레드 리친은 '컴퓨터시대의 사진'에서 "사진이 시가 되고 있다"고 썼다. 그렇더라도 보도사진의 생명은 정직성이다. 연출하지 않아도 맥락 설명이 없으면 왜곡된 사진일 수 있다고 한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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