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 콘딧-항공기 제작업체인 보잉의 CEO.리처드 와고너-자동차 메이커인 GM의 CEO.둘다 자기 분야에서 세계 최대기업을 이끄는 경영인들이다. 이 둘은 '9·11테러' 이후 아주 다른 경영행태를 보이고 있다. 특히 '해고'에 관해선 정반대 입장이다. 이 두 CEO의 입장차이가 요즘 '해고행위는 매국인가 애국인가'하는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해고매국론'의 깃발은 와고너가 들었다. 그는 "미국에서 발생한 테러에 대응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종업원들을 일하게 만들고 공장에서 노랫소리가 나오게 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GM은 일부 차종을 3∼5년간 무이자로 파는'Keep America Rolling(미국을 움직이게 하라)'이라는 대대적인 캠페인을 벌이는 등 이번 테러사건으로 '미국을 상징하는 애국기업'으로 떠오르고 있다. 상공회의소는 '해고매국론'의 전도사 역할을 하고 있다. 토머스 도나휴 회장은 "해고는 테러리스트들에게 굴복하는 것"이라며 "테러참사를 해고 기회로 삼지 말라"고 신신당부하고 다닌다. 실제 시어스로벅백화점 등 일부 회사들은 해고자제를 선언하기도 했다. 해고매국론의 비판대상은 보잉의 콘딧.테러발생 바로 이틀 뒤에 3만명의 해고를 발표,눈치를 보던 다른 기업들에 대량해고의 물꼬를 터준 인물이다. 테러 이후 실업이 급증하는 등 해고가 쟁점으로 떠오르자 그를 위시한 해고 경영자들에 대한 비난이 잇따르고 있다. 그러나 그는 당당하다. "해고와 애국심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며 "경영을 잘못해 기업을 파산시키는 것은 더욱 비애국적인 행위"라고 '해고애국론'을 제기한다. 해고는 평소 미국에선 논쟁의 대상조차 되지 못하는 주제다. 기업들은 경영이 어려워지면 즉각 해고를 통해 원가를 줄이는 게 관행이었다. 이런 관행에 누구도 시비를 걸지 못했다. 주주를 위한 경영이 기본인 미국기업 경영자들의 최대 관심사는 종업원 복지가 아니라 바로 주식값이기 때문이다. 그런 미국에서 해고가 이슈가 되는 것만 봐도 이번 테러가 경제계에 주는 충격이 어느정도인지를 알 수 있게 해준다. 뉴욕=육동인 특파원 dongin@hankyung.com